사업 다각화 속도 내는 정유업계…정유사는 지금 부동산 영업중
입력 2023.12.01 07:00
    정유업 정제마진 의존도 높아…사업 확장 불가피
    주유소 부지 물류센터 활용…도심지 위치해 강점
    아직 수요 개인·스타트업 그쳐…수익화 시일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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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요즘 어디 가면 부동산 (중개)업자라고 소개하고 다닌다. 최근 정유사 영업은 다른 게 아니라 부동산 영업이다" (한 정유사 사업개발 담당자)

      국내 정유업계가 주유소 유휴부지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업인 정유업이 정제마진 의존도가 심하고, 전기차가 늘면서 휘발유·경유 등 내연기관차의 비중이 줄어들어 사업 재편이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이에 국내 정유사들이 물류센터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영업에 나서는 모양새다.

      GS칼텍스,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대표 정유사들은 주유소 유휴부지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 주유 역할에만 국한됐던 주유소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단 취지인데,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안이 현재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분위기다. 

      정유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이유로는 지나친 정제마진 의존도가 꼽힌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운영비용과 유가 등 원자재 비용을 뺀 수치로,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중 하나다. 다만 유가 변동성에 취약해 수익성 예측이 힘들고 등락이 심하다. 

      실제로 국내 정유 4사의 3분기 영업이익은 2조9969억원으로 나타났는데, 2분기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과 대비해 한 분기만에 영업이익이 4조원 가까이 늘었다. 업계에선 이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의 원유 생산 감소로 인한 제한된 공급 상황에서 등유와 경유의 수요 개선으로 정제마진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국내 주유소의 낮은 마진율도 정유사들이 국내에서 사업 확장을 모색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기름값이 올라 주유소와 정유사가 돈을 많이 벌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주유소 마진 자체가 굉장히 박해 정유사에 떨어지는 수익은 거의 없다"며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버는 돈은 없고 수출로 돈을 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유소는 총 1만990개다. 일반적으로 주유소 부지는 500~1000평 내외라 물류센터가 들어서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도심지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인 강점이 있는 동시에 차량 진·출입이 용이한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또한 운영 인력이 상주하고 있어 별도의 인건비가 소요되지 않는단 점도 주유소를 물류센터로 활용하기에 용이하단 설명이다.

      GS칼텍스는 지난 22일 서울시와 협업해 서초구 소재 내곡주유소에 '미래형 첨단 물류 복합 주유소'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기존 주유소 공간에 스마트 물류시설과 로봇, 드론 등 미래 물류 기능을 집약한 것으로 민·관이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물류시설은 주유소 내 105.62㎡(32평)에 조성됐다. GS칼텍스는 현재 전국 31개소에서 물류 픽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SK에너지도 최근 물류 플랫폼 서비스 기업 굿스플로 지분을 전량 인수하며 도심형 물류센터 사업을 본격화할 채비에 나섰다. 2020년 굿스플로 지분 41%를 확보한 SK에너지는 7월 추가로 지분 44%를 인수했고, 8월 18일자로 나머지 15%에 대한 지분도 인수해 9월 자회사로 편입했다. SK에너지는 올 초 네이버·한진택배와 손잡고 서울 동대문구에서 주유소를 거점으로 활용한 물류 서비스를 시범운영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9년 물류 스타트업 메이크스페이스와 협업해 주유소 유휴 공간을 대여형 창고로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유통업체와 협력해 주유소 공간을 마이크로 물류센터로 임대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유사들이 물류센터 등 주유소 활용도를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은 수요가 개인과 스타트업 등으로 한정돼 본격적인 수익화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경제성만 따져 스타트업 같은 운영업체(임차인)에 과도한 비용을 전가하게 되면 서로가 힘든 만큼 아직은 우호적인 조건으로 물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도심형 미들 사이즈 창고에 대한 부동산 니즈가 꽤 많이 있는 만큼 어떻게 이 사업을 운영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