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 회사채 흥행에 조달 서두르는 발행사들…배경엔 고금리·공모주 열풍
입력 2024.02.14 07:00
    두산퓨얼셀, 수요 몰리며 금리 130bp 낮게 조달
    마땅찮은 투자처 속 각광받는 고금리 비우량채
    증권사 리테일·하이일드 펀드 수요가 흥행 배경
    두산에너빌리티·한진칼·이랜드월드 줄줄이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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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등급 BBB급의 비우량채 인기가 뜨겁다. 단순히 기관투자자들이 자금을 집행하는 시기와 맞물린 '연초효과' 탓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수요가 집중되며 발행 금리가 크게 낮아지는 사례까지 늘어나고 있다.

      비우량채 흥행의 배경으로는 금리 메리트와 공모주 열풍이 꼽힌다. 지난해 연말 대비 회사채 이자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우량채에 대한 리테일 수요가 급증했단 것이다. 공모주를 우선 배정받기 위한 하이일드 펀드의 자금이 몰리는 것도 영향을 미쳤단 평가다. 이에 다른 발행사들도 조달을 서두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산퓨얼셀(신용등급 BBB)은 지난달 30일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기관의 주문이 몰리며 발행 금리가 크게 낮아졌다. 1년 6개월물은 개별민평 대비 120bp(1bp=0.01%포인트) 낮게, 2년물은 130bp 낮게 발행했다. 

      덕분에 두산퓨얼셀은 당초 예상보다 낮은 비용으로 지난 7일 780억원 조달에 성공했다. 증권가에서는 비우량채가 1%포인트 이상 낮은 금리로 발행을 성공한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비슷한 신용등급을 보유한 AJ네트웍스(BBB+), SLL중앙(BBB) 등도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AJ네트웍스는 1년물과 2년물의 두 개 트렌치 모두에서 90bp 이하로 수요를 받았다. 증액하는 과정에서 다소 금리가 올라 최종 민평금리 대비 80bp, 52bp 아래에서 금리가 확정됐는데, 모두 5%대 이자율로 조달에 성공했다. BBB급의 민평금리가 6~7%대 선에서 형성돼 있단 점을 고려하면, 조달 금리를 크게 낮춘 셈이다.

      시장에서 비우량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다른 BBB급 발행사들도 조달을 서두르려는 분위기다. 당장 이달에만 두산에너빌리티, 한진칼, 이랜드월드 등이 수요예측을 대기하고 있다. 이 밖에 다른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을 위해 주관사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자는 "최근 비우량채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흥행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다른 발행사들도 회사채 발행을 문의해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3월까지는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우량채가 흥행하는 이유는 금리 인하 기대감 속 우량채의 금리가 지난 연말 대비 4~50bp 낮아진 상황 속에서도, 비우량채는 아직 6~7%대의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리테일 수요가 비우량 회사채로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산퓨얼셀의 2년물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에 따르면, 총 57건의 주문 가운데 약 67%에 달하는 38건의 주문이 투자매매중개업자로부터 들어왔다. 통상 투자매매중개업자가 확보한 물량의 상당수가 증권사 리테일부서를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된다.

      비우량채 흥행이 최근의 공모주 열풍과도 관련이 있단 분석도 나온다. 투자 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우량 회사채에 투자하는 하이일드 펀드가 공모주를 우선 배정받기 위해 공격적으로 BBB급 회사채를 편입하고 있단 것이다. 

      지난해 당국의 정책 변경에 따라 올해부터 하이일드 펀드에 공모주 우선 배정 비율이 기존 5%에서 10%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공모주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비우량채를 편입하려는 하이일드 펀드 수요가 늘어났단 설명이다. 현행 규정상 신용등급 BBB+ 이하 회사채 45% 이상을 포함해 국내 회사채를 60% 이상 담을 경우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받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BBB 등급 이하 회사채는 수요가 넘쳐나서 오히려 물량 확보하기가 더 힘들다"라며 "채안펀드(채권시장안정펀드) 매입 범위를 A등급 이하로 확대하라는 이야기는 쏙 들어갈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