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혼란한 반도체·이차전지 등에도 수요
실적 부진·투자 감소 스타트업에는 생존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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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에서 본격적인 역사가 2년이 채 되지 않은 크레딧펀드가 재조명받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져 은행 대출 등이 부담스러운 가운데 일부 산업군은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더 크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업계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등을 대신하기 위해 크레딧펀드를 통한 자금 조달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건설사의 단기자금 조달시장의 불안감이 더 커진 영향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만기가 돌아온 PF-ABCP를 13조5000억원으로 추정하면서 자금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만큼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F-ABCP는 ▲시행사 등 부동산 개발 사업자에 자금을 댄 대주단이 대출채권을 자산유동화회사(SPC)에 넘기고 ▲SPC는 대출채권을 토대로 ABCP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파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크레딧펀드를 활용할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금 조달 구조를 만들 수 있다. PF-ABCP는 만기가 일반적으로 3개월로 짧은 반면, 크레딧펀드는 평균 투자 기간이 3~5년이다.
PF-ABCP 신규 발행은 어려운 상황이고 설사 발행해도 현 시점에선 투자 주체가 마땅찮다.이에 금리가 올라가고, 금리가 올라가니 불안감이 커져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PF-ABCP 만기 연장은 시장의 우려와 달리 아직까진 대체로 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투심도 악화했다. 일부 건설사는 발행 계획을 미루는 등 조달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물량을 채우더라도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시공능력 상위 50위권 건설사(건설 매출 비중이 50% 미만인 업체는 제외)는 올해 상반기에만 2조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롯데건설-메리츠증권, 태영건설-한국투자증권의 투자협약 사례와 달리 건설사가 담보를 잡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크레딧펀드의 장점으로 꼽힌다. 크레딧펀드는 운용사가 은행처럼 단순 대출기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이나 지분을 취득하지도 않는다.
건설사 입장에선 크레딧펀드를 통해 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크레딧펀드는 은행보다는 금리가 높지만, ABCP 보다는 낮다. 최근 한 자릿수 후반대 금리도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PF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거란 전망에 건설업 전반에 대한 투자 기피 심리가 커지면서 PF-ABCP의 금리는 상승세다. 업계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경우 내야 할 이자가 10%대 초중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담보를 잡는 등의 복잡한 구조를 짜지 않으면서도 ABCP 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 입장에서 크레딧펀드는 매력적일 것"이라 밝혔다.
조달이 어려워진 건 비단 건설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수의 비우량기업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상당수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벤처투자 금액과 건수 모두 줄어드는 상황에서 크레딧펀드는 스타트업이 생존할 하나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 지분 투자와 달리 스타트업 대주주 지분을 당장 희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기업 규모와 별개로 시장 자체가 혼란스러운 반도체·이차전지 업계에서도 수요가 있을 거란 분석이다. 회복세로 돌아선 반도체 산업은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며, 이차전지 산업은 전방 산업이 부진하니 사실상 '돈 먹는 하마' 신세로 전락했다.
국내 사모대출펀드(PDF)는 지난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만 가능했던 대출형 펀드 조성이 일반·기관전용 운용사들까지 확장됐다.
부분적인 자산운용 전략만 가능했던 운용 규제에서 메자닌 투자, 금전차입, 대출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됐지만, 국내에선 아직 대형 운용사들만 관계사를 설립해 사모크레딧펀드(PCF)를 운용하고 있다. IMM PE의 IMM크레딧앤솔루션(ICS), VIG파트너스의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 글랜우드PE의 글랜우드크레딧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크레딧펀드 관계자는 "크레딧펀드를 통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최근만의 일은 아니고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그 수요는 보다 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아직 국내 운용사의 경우 해외 운용사보다 펀드 규모가 작아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건 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