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 태영건설·롯데건설 등 지원 이어져
방산 수출 난항 당시 시중銀 호출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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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불황기에 시중은행이 건설사의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다. 'K방산'이 본격적으로 떠오를 때도 시중은행은 '날개' 역할을 자처했다. 단 자발적인 지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중은행의 통 큰 지원 뒤편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시중은행이 '일제히' 건설사를 지원하는 뒷배경에는 정부의 지원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설사 줄부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후방 연쇄 효과'를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건설은 금융기관과 2조3000억원 규모 펀드 조성을 통해 PF우발채무를 장기 조달구조로 2월 7일 전환했다. 이번 펀드에는 ▲신한은행·KB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산업은행 등 5개 은행(1조2000억원) ▲키움증권·대신증권·KB증권 등 3개 증권사(4000억원) ▲롯데 그룹사(7000억원)가 참여했다.
신한은행은 태영건설 주요 PF 사업인 마곡 대형 복합시설 '원웨스트서울'(마곡CP4) 사업장의 완공을 위해 태영건설 몫의 공사비 약 3700억원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2월 25일 나섰다. 마곡CP4 대주들이 추가 출자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신한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기존 투자 계약에 따르면 교보생명 740억원, 신한은행 600여억원, IBK기업은행 500여억원, MG새마을금고·KB국민은행·푸본현대생명 등은 약 250억원을 출자해야 한다.
건설업은 후방 고용 효과가 큰 대표적인 산업이다. 건설사 한 곳이 무너질 경우 건설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는 물론 타 건설사에까지 파급효과가 이어진다. 건설현장에 고용된 일용직 등의 근로자, 해당 현장을 기반으로 한 소상공인 등도 생계를 잃게 된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경우만 하더라도 581개 협력업체와 5조8000억원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시중은행은 정부의 요청 아닌 요청에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지시와 다름없지만,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타의적으로 건설사를 지원하는 모습이 연출되는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에 정부의 요청이 내려오면 심사부와 실무단은 정부의 의중이 티가 나지 않게 지원 구조를 맞춰야한다"며 "외형은 요청이지만 실상은 지시라 거절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정부는 건설업과 더불어 방산업도 시중은행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2차 계약이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한도 제한으로 난항을 겪던 작년 말이다.
국방부는 작년 11월 용산 국방부 청사에 5대 시중은행을 불러 모았다. 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폴란드에 자금을 대출한다는 내용이 담긴 투자의향서(LOI) 체결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 업체의 수출대금을 5대 시중은행이 균등 분할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은행은 각 사의 대출 여력과 적정 금리 등 세부적인 대출 조건을 논의했다.
이후 각 시중은행에서 LOI를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출 규모는 수출입은행이 자본금 제약으로 부담하기 어려운 수조원대가 언급됐으며, 액수는 유동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LOI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수조원의 지원은 수출입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도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국방부가 지원을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시중은행은 별도리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원이 이뤄지진 않았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부 담당부서와 은행 간 방산 수출에 있어 금융 관련 사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국내 방산업계는 폴란드의 정권 교체로 기존 방산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폴란드와 총 124억달러(약 17조원) 상당의 무기 수출 1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작년 2차 계약을 맺어 계약을 매듭지을 계획이었다. 기본계약에 따르면 2차 계약 예상 물량으로 K-9 자주포는 1차 계약(48문)보다 많은 600문, K-2 전차는 1차 계약(180대)보다 4배 이상 많은 820대로 계획돼 30조원 규모로 추산됐다.
현행 수출입은행법 및 시행령은 단일 차주에 대한 신용공여(대출·지급보증 등 은행의 직간접적 거래)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 신용공여 시 적용되는 방식으로 산출한 작년 1분기 기준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은 약 20조원이다. 이에 따라 단일 차주에 금융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최대 약 8조원이다.
124억달러(약 17조원) 규모의 1차 계약에서 폴란드 정부는 우리 정부에 12조원 지원을 요청했다. 수출입은행은 무역보험공사와 각각 6조원씩 지원하는 방안을 협상했다. 수출입은행은 금융지원 한도 8조원 중 6조원을 지원하면 2차 계약에서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현행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높이는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수은법)이 최근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건설업과 방산업에 정부의 지원 요청이 집중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어떤 기업에 지원할지는 정부의 의중에 달려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