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부채인 사업비 대여금 늘어 가고, 대주단에 소송 당하기도
4대지주 신탁사의 책준형 사업장 600곳…손해는 지주가 부담할까
부동산신탁사, 금융지주로부터 유상증자 받는 등 유동성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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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계열의 부동산신탁사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잠재적 부채인 신탁계정대가 급증하고 부채비율이 10년래 최고수준에 올랐다. 모회사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는 부동산신탁사가 속속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고금리가 이어지며 금융지주의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거론된다.
24일 하나금융지주의 2023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자산신탁의 고정이하자산(부실채권) 비중이 47%로 집계됐다. 전년도 6.6%에 비해 8배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신한자산신탁의 고정이하자산비중은 66.6%, KB부동산신탁은 43.72%, 우리자산신탁은 32.21%를 기록했다. 은행의 고정이하자산비중이 한자릿수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다만, 부동산자산신탁사의 고정이하자산비중을 은행이나 증권사의 지표들과 동일시하긴 어렵다.
부동산신탁사의 고정이하자산의 상당수는 신탁계정대다. 사업비를 공사현장에 빌려주는 개념인만큼 분양에 성공할 경우에는 수익을 얻지만 분양성과가 안좋을 경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이른바 잠재적 부채다. 신탁계정대는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보증한 사업장이 멈춰 대주단에 손실을 물어줘야할 때도 늘어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탁계정대는 통상 사업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대출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량 채권이 아니다. 잠재적 부채인 우발채무라고 보는 게 맞다"라며 "요즘 같이 부동산 업황이 둔화된 시기엔 신탁계정대 증가세를 주의해서 봐야한다"라고 말했다.
KB부동산신탁 2023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탁계정대는 6859억원으로 전년도(2423억원) 대비 세 배 늘었다. 자기자본인 2860억원 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KB부동산신탁의 부채비율은 200%로 2022년 보다 9배 이상 급증해 업계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신용평가업계서 유심히 보고 있을 정도다.
신한자산신탁의 지난해 신탁계정대 규모는 2095억원으로 574억원이던 2022년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하나자산신탁의 2023년도 말 기준 신탁계정대 규모는 251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시기(1654억원)보다 50% 이상 늘었다.
신탁사가 부동산 호황기에 무분별하게 맺은 책임준공 약정으로 잠재부채(신탁계정대)는 늘어나는 추세다. 책임준공 약정은 신탁사가 일정 기한 내 준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신용도가 낮은 지역 중소건설사를 대신해 보증을 서주고 분양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수수료를 더 받는 개념이다.
지난해부터 자금조달 비용 및 공사비 상승으로 공기를 제때 못 맞추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보증을 했던 신탁사가 대주단에 손실분을 물어줘야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원창동 물류센터 건설공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주단은 지난달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5년 이후 책임준공형 사업장이 급증했기 때문에 부동산신탁사가 감당해야할 손실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사업장은 1000여개에 이르고 그 중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비중이 약 60%다.
KB부동산신탁, 신한자산신탁, 우리자산신탁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적자전환했다. 각각 1623억원, 43억원, 251억원의 영업손실이 집계됐다. KB부동산신탁은 연간으로 9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탁사들은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금융지주로부터 자금을 수혈받거나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을 뚫는 식이다. KB부동산신탁은 지난달 단기차입 한도를 34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공시했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각각 2000억원, 2100억원의 자금을 계열사 부동산신탁사에 투입했다.
한때는 금융지주들이 부동산신탁사 인수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실자산으로 인한 손해를 대신 갚아야하는 상황이 됐다는 관측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신탁사들 사이에서 책임준공형 보증약정이 유행하면서 올해에도 상당수 공사장에서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로 건설현장이 멈춘 곳이 많이 보이는데 신탁사에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라며 "대주단에게 물어줘야 하는 손실분을 결국 금융지주가 떠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