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역대급 실적'은 5년짜리? 新계약 줄어 곳간 비어가는 곳 '요주의'
입력 2024.05.22 07:00
    보험사들 역대급 실적 이어가지만 '가정치 놀음'
    관건은 신계약 통한 미래이익 성장...옥석 가려야
    투자자들 관심도 순이익에서 신계약으로
    보험사들 계약 유치하기 위해 특정 상품 과당경쟁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보험사들이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이후 보험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중심 영업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성장이 정체된 현실은 큰 변화가 없는데, 해지율 등 보험사에 유리한 가정으로 CSM만 높여 미래이익을 앞당겨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신계약이 줄어드는 보험사는 미래 '곳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요주의가 필요하단 설명이다. 회사에 유리한 가정치를 통해 앞당겨쓰는 순이익은 5년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금이 '마지막 파티'라는 경계의 시선도 없지 않다. 투자자들의 관심 역시 당장의 순이익보단 신계약을 통한 미래이익 창출로 옮겨가고 있다. 

      보험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역대급 실적을 이어갔다. 특히 손보사들은 이익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다시금 '실적 부풀리기' 논란에 휩싸였다. 

      올 1분기 상장 손보사들은 전년동기 대비 평균 30% 이상의 수익 증가를 기록했다.  한화손해보험은 1분기 보험손익이 전년 동기 대비 63%오른 1494억원을 기록했다. 현대해상 역시 전년동기 대비 50%, 넘는 477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5대 손보사들의 당기순이익 합계는 2조5000억원으로 1년 사이 5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손보사 호실적의 배경은 역시 회계기준 변경이다. IFRS17 도입에 따라 미보고발생손해액(IBNR) 제도 변경이 이뤄졌다. IBNR은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했으나 아직 보험사에 청구되지 않은 사고에 지급될 보험금으로 추정해 책임준비금 중 지급준비금을 편성하는 금액이다. 생보사와 손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도를 적용했는데, 해당 제도가 하나로 통일되면서 손보사는 이전대비 추가 이익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알맹이는 변한 게 없는데,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언제 줘야하는지 기준일이 바뀌며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생보사들의 실적은 손보사 대비 다소 부진했다. IBNR 변동으로 인한 영향이 손보와 거꾸로 작용하며 추가 지급금을 쌓아야 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 대부분의 생보사가 시장의 실적 추정치(컨센서스)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성과를 내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명보험업계는 IBNR 조정에 따른 비용이 올해 1분기 크게 반영됐지만 이후로는 순이익에 미치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라며 "손보사는 해당 제도 변경으로 환입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올 1분기 생보업계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보험업계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회계기준 변경이 실적에 준 영향은 매우 컸다. 지난해 국내 전체 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약 13조원에 달했다. 이는 새로운 회계제도 도입 전 대비 45% 증가한 수치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단순 합산 순이익이 주요 금융지주 연간 순이익을 넘어서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기준'이 변해 쌓인 이익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일단 부정적이다.

      새로운 회계제도에선 보험사들이 미래에 들어올 이익을 추정해 매 분기마다 이를 반영한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이러한 가정들을 개선하다 보니 분기마다 실적 논란이 이어졌다. 금융당국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진화에 노력을 기울인 끝에 널뛰기 실적은 사라졌지만, '과연 진짜로 이익을 내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우려의 핵심은 현재 보험사들의 실적 개선이 제도 도입 초기의 반짝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나오는 실적은 과거에 팔아 놓은 보험계약에서 나올 이익(CSM)을 추정해 매 분기마다 상각하는 방식이다. 보험사가 현재 수준의 이익을 꾸준히 내기 위해선 상각되는 만큼 신계약을 통해 CSM이 증가해줘야 한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만약 신계약이 예상만큼 팔리지 않으면 해당 보험사의 순이익은 중장기적으로 줄어드는 구도가 된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선 당장의 순이익이 중요한게 아니라 신계약을 통해서 CSM이 증가하는 게 핵심적인 이슈라고 말을 모은다.

      한 계리법인 관계자는 "당장 5년만 지나도 현재 산정한 CSM이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됐는지 파악이 될 것이다"라며 "특히 CSM이 상각되는 만큼 신계약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회사가 역성장한다는 심각한 신호"라고 말했다.

      당장 이 때문에 올해 1분기 미래에셋생명 등 일부 신계약이 부진한 보험사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미래에셋생명의 일반계정 신계약 건수는 12만2124건으로 전년 대비 45% 하락했다. 신계약 건수 하락은 미래이익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민감해 하는 부분이다. 올 1분기 신계약 CSM이 전년동기 대비 5% 하락한 한화생명 역시 실적설명회에서 날 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실적 발표에서 전문가들은 당기순이익 보다 신계약 등 CSM 증가가 이뤄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며 "당장 실적이 좋아도 미래에 이익이 줄어들 회사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보험사간 과당 경쟁의 핵심 배경이기도 하다. CSM을 늘리려면 일단 장기 보험을 팔아야 한다. 장기 보험이 단기 보험보다 CSM에 주는 영향이 훨씬 큰 까닭이다. 

      장기 보험은 가입자들의 부담이 커 그간 점점 작아져가던 시장이었다. 이렇다보니 상품 설계의 방향도 납입 부담은 줄이고 보장은 장기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거의 일원화됐다. 생보사는 저해지 단기납 종신보험을, 손보사는 무해지 순수보장성 보험을 집중적으로 판매한 것이다. 무·저해지 상품은 보험료를 싸게 적용하는 대신 조기 보험계약을 해지할 경우 해지 환급금이 아예 없거나 적게 주는 상품이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 상품을 설계할 때 해외의 비슷한 상품보다 지나치게 높은 해지율 가정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보험사들은 가입자 중 중도이탈자가 많아 당초 계약한만큼의 환급금을 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미리 이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승엽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금감원과 한국회계학회가 공동 주최한 '무·저해지 보험상품 위험 요인과 시사점' 주제 발표에서 "실제 해지율이 보험사 예상과 달리 유의한 수준에서 부정적 차이를 보일 가능성 크다"며 "캐나다 무해지 상품의 실제 해지율 대비 약 3~10배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해지율이 보험사들의 가정보다 낮을 경우 보험사들이 되돌려줘야 하는 보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해외에선 이 때문에 파산한 사례도 나왔다.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은 보험사 내부에 쌓인다. 보험사들은 회계제도에 따라 여러 가정을 더해 이 중 매출로, 이익으로 인식할 금액을 분류한다. 현 시점에서의 대규모 상품 판매가 당장은 매출 및 이익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향후 가정과 상황이 변하면 손바닥 뒤집듯 대규모 손실을 인식해야 할 수도 있다.

      IFRS17은 실적 인식과 상품의 가정치에 대해 회사측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바꾸어말하면 현 경영진의 필요에 의해 현 시점에 유리하게 설계된 상품의 방향이 추후 어긋났을 경우, 미래의 경영진과 주주들에게 부담이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1분기 보험사 실적 발표 시즌 중 주요 증권사 보험 담당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회사마다 가정치가 달라 실적 추정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생보사들이 대규모로 팔아치우고 이익을 인식했던 고금리 보장 상품들이 2010년 이후 역마진 상품으로 변해 보험사들의 목을 조르던 게 대표적인 사례"라며 "회사의 체급을 키우겠다며 저축성 보험 시장으로 대거 달려간 보험사들 역시 회계제도 변경 후 자본적정성 저하로 고생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