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신사옥 건설 공사비로 쌍용건설과 소송전
시공사의 추가 공사비 부담은 불공정하다는 최근 판례
"발주처 귀책 사유 더 클 경우 공사비 증액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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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와 쌍용건설이 물가를 반영한 공사비 증액 여부를 두고 법정 다툼이 본격화한 가운데, '물가변동 배제특약' 효력을 무효한 판결이 나왔다. KT는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 건설사와도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어, 이번 쌍용건설과의 소송 결과가 추후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KT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송의 소장이 지난 5월 10일 쌍용건설에 전달됐다. KT는 KT 판교 신사옥 건설과 관련해 쌍용건설에 공사비를 모두 지급해 추가 비용 요구에 관한 지급 의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를 법원에 확인받을 목적이다. 쌍용건설은 법무팀 검토를 거쳐 반소를 제기할 계획이다.
쌍용건설은 지난 2020년 KT 신사옥 건설 공사를 967억원에 수주했다. 이후 쌍용건설은 2022년 7월부터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며 공사비 171억원 증액을 KT에 요청했다. KT는 도급계약서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KT는 "KT와 쌍용건설이 맺은 계약은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명시하고 있다. 판교사옥 건설과정에서 쌍용건설의 요청에 따라 공사비 조기지급,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억5000만원), 공기 연장(100일)의 요청을 수용했으며, 이를 포함한 공사비 정산을 모두 완료했다"며 "(쌍용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는)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해 법원에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KT와 쌍용건설의 법정 다툼이 본격화한 가운데, 최근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무효한 대법원 판결이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대법원은 부산의 한 교회가 건설사에 제기한 선급금 반환 2심 항소심에서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이유로 내세워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발주처의 귀책으로 공사가 지연된 경우 증액된 공사비를 시공사가 부담하는 건 불공정하며, 시공사가 공사 증액분을 발주처에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물론 해당 판례를 KT와 쌍용건설 사이의 소송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판례는 건설사의 귀책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KT와 쌍용건설 중 누구의 귀책 사유가 더 큰지를 두고 공방이 있을 전망이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도 KT와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담긴 도급계약을 체결한 만큼 이번 소송전의 결과가 각 건설사의 공사 진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건설사 일부는 국토부 건설분쟁 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한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KT 광화문웨스트 사옥의 리모델링 공사를 담당하고 있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원자잿값, 인건비 등 인상에 최초 계약 금액 대비 300억원이 추가 투입돼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양사가 계약한 공사비는 1800억원이다.
롯데건설은 KT 부지가 포함된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이스트폴' 사업 공사비를 1000억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발주처인 KT는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양1구역 정비는 KT가 보유한 구 전화국 부지 일대 50만5178㎡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사업비 규모 1조원 이상으로 역대 KT가 진행한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큰 사업이다.
한신공영은 KT 자회사 KT에스테이트가 발주한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지난 2020년 수주해 작년 9월 준공했다. 계약 당시 공사비 519억원 대비 추가 비용이 141억원 발생해 KT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DL건설은 KT자회사 KT클라우드가 발주한 서울 금천구 '가산아이윌 데이터센터'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DL건설과 KT가 공동 수급하며, 총공사비 약 3000억원 중 DL건설은 1028억원을 투입했다. 예상 준공연도는 2025년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도급계약서에 명시한 물가변동 배제특약 외에도 KT의 고유한 사내 문화 때문에 협상이 더 어렵다는 평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KT에 남아있는 공기업 문화 특성상 법으로 강제된 사안이 아닐 경우 KT 실무자가 윗선에 공사비를 올려야 한다고 보고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다수 건설사에서 각 발주처와 공사비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다. KT뿐 아니라 다수 현장에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향후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번 판례로 기존 시공사와 발주처 갈등의 판세를 단숨에 뒤집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