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에 150억 날아갔다"…해외 부동산 부실 현실화에 기관들 '긴장'
입력 2024.06.27 07:00
    美운용사와 투자한 현지 오피스 1분기 2%↓
    공모펀드 중심 해외 부동산 부실 현실화에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도 부실 자산 '수두룩'
    무분별한 투자 행태 도마…실사 없이 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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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고금리와 공실률 급증에 따른 해외 부동산 부실 우려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올해부터 공모펀드의 만기가 순차적으로 도래하면서 '도미노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단 공모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가(LP)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도 손실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기관이 투자한 오피스 중 일부는 올 1분기에만 2% 가까이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에 부동산 호황기 시절 무분별하게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기관들의 행태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 공제회가 미국 부동산 운용사 클라리온 파트너스(Clarion Partners)를 통해 투자한 현지 오피스의 가치가 올해 1분기에만 약 2% 하락해 150억원대 평가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1000억원 이상 가격이 하락한 상황에서 한 분기만에 적지 않은 규모의 손실이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럽도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가 있지만, 1분기 미국 오피스의 하락폭이 유럽의 두 배에 달했다"며 "유럽보다 미국쪽 오피스에 집중 투자한 기관들의 고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 부실은 우선적으로 공모펀드를 중심으로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이달 초 이지스자산운용의 독일 트리아논 부동산 펀드가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19일에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벨기에 브뤼셀 오피스 빌딩 펀드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이 발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의 6월 기준 순자산은 2조497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1월 4조3011억원 고점 대비 약 40% 이상 줄었다. 순유입자산을 고려하면 순손실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만기다. 만기가 충분히 남아 있으면 금리 인하 기대감에 기대어 가치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아직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들이 많다. 해외부동산 펀드의 만기는 통상 5~7년 정도다. 2017~2019년에 설정한 펀드들의 만기가 도래하고 있는데, 당시엔 해외 상업용 부동산이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바탕으로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최근 디폴트가 발생한 이지스자산운용과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펀드 역시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설정된 펀드들이다. 이에 금융사들은 만기 연장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대출을 많이 낀 경우 차환 리스크가 있어 만기 연장도 녹록치 않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는 공모펀드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이 없지만, 손실률이 공모펀드 못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올해 기관들은 미국 부동산에 대한 신규 투자를 사실상 중단한 상황이다. 기존 자산의 부실을 관리하는 데도 손이 부족한 탓이다.

      더 큰 문제는 기관들도 정확한 부실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가치평가를 통해 분기별로 자산가치가 얼마나 하락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기관은 대응책 마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라리 상황이 낫다는 설명이다. 장부가평가를 하는 기관들은 만기가 도래해 펀드를 청산할 때까지 손실을 반영하지 않아 숨겨진 부실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2017년~2019년 저금리 기조 속 부동산 자금 조달이 용이했던 때 기관들의 무분별한 투자 행태도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당시 해외 부동산 펀드가 중위험·중수익 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국내 기관들이 앞다퉈 투자를 집행한 바 있다. 글로벌 운용사의 현지 오피스 투자 입찰에서 국내 기관들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코로나 시기에는 제대로 된 실사 없이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현지 출장이 제한된 상황에서, 현지에 상주하는 인력이 대신 실사를 하고 보고한 사항을 바탕으로 투자를 하는 식이다. 담당자가 직접 실사를 나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시엔 좋은 투자처를 선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였단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손실은 고금리 기조와 코로나에 따른 재택근무의 정착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쉽게 예상할 수도 없었고, 투자자 탓을 할 수도 없는 문제지만 기관들의 무분별한 투자 행태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아무리 코로나라 하더라도 제대로된 실사도 없이 투자를 집행하는 것은 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기관들은 펀드의 만기 연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무조건적인 만기 연장은 부실을 이연하는 것일 뿐이란 관측이 많다.

      한 LP 관계자는 "현재 '사형선고'를 받고 일자만 기다리고 있는 자산들이 많다"며 "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맞는 건지, 지금이라도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헐값에 자산을 매각하고 엑시트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