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vs 재판부 ‘장외전’만 분주…다시 출발선 선 '세기의 이혼'
입력 2024.07.01 07:00
    최 회장 "판결문 경정 부분, 치명적인 오류"
    재판부 "핵심 근거 변함없어…판결 그대로"
    더 나빠질 수 없는 SK?…이례적인 '장외전'
    계속될 법리싸움에 로펌들 추가선임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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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대법원의 손에 넘어갔다. 대법원의 판단을 점치기 어려운 가운데 SK그룹과 재판부의 ‘장외전(場外戰)’이 계속되며 이례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판결문 일부 수정으로 소송이 ‘새 국면’에 들어섰다는 시선도 있지만, 판결의 ‘핵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산 분할 규모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마지막 법리 싸움을 앞두고 로펌 업계는 최 회장 측의 추가 선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관련해 1조3808억원 규모 항소심 재판부의 재산분할과 20억원 위자료 판단에 불복해 이달 20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노 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항소 결과에 대해 상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기의 이혼’ 판결을 앞두고 ‘잃을 것 없는’ SK 입장에서는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모두 꺼내고 있다는 평이다. 상고에 앞서 SK그룹은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재산 분할 관련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태원 회장이 깜짝 등장해 직접 사과하면서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고법 가사 2부(재판장 김시철)는 최 회장 측의 오류 지적을 반영해 최 회장과 노 관장 2심 판결문 가운데 지난 1998년 5월 대한텔레콤(SK C&C) 주식 가액 관련 부분을 수정했다. 다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내용은 그대로 유지했다. 해당 오기가 재산 분할 비율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의 오류 지적에 곧바로 해당 내용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판결 자체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18일 판결문 경정(更正·법원이 판결 후 계산이나 표현의 오류를 고치는 일)에 대한 설명 자료에서 선대 회장과 최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영 활동의 ‘중간 단계’ 계산 오류를 수정한 것이고, SK 주식의 가치 증가에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노 관장 측 기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문 경정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판결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경정 등이 적지 않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통상 원고나 피고 등이 오류를 발견해 판결문을 경정해 달라고 신청을 하는데, 신청이 없어도 명백한 오류가 발견된다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경정할 수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정된 부분이 재산분할 판결이 바뀔 정도의 중요한 오류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며 “판결문 경정은 SK 입장에서는 ‘재판부의 판결을 그대로 믿지 말아 달라’ 정도의 메시지를 준 정도고, 소송 상대방이 아니라 재판부를 상대로 여론전(?)을 보이는 것은 대체로 정치인들이 하는 것은 봤지만 기업인은 의외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 측은 숫자 오류 정정에 따라 결과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숫자 오류 정정은 최 회장의 경영활동 ‘중간단계’에 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은 것으로 재판 결과를 흔들 근거가 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24일에는 최 회장 측이 항소심 재판부에 판결문 경정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장을 냈다. 만약 재항고가 받아들여지면 대법원은 이혼소송 본안 상고심에 더해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도 심리하게 된다.

      양측이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사실상 판결문 경정으로 최 회장 입장에선 ‘심리불속행 기각’이란 최악의 경우는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경정이 허용 범위를 벗어났는지 판단하고, 해당 판단에 따라 확정 사실 등을 고려해 원심 판결을 살피는 과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때 대법원에서 전제가 달라진 것의 오류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최종 결론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상 판결의 핵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 선대 회장으로 흘러갔고 회사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는 점이기 때문에, ‘주당 가격이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는 사실이 분할 대상 재산의 계산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의견이다. 

      3심을 앞두고도 치열한 법리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양측의 변호인단 구성 변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상고를 앞두고 최 회장은 법률 대리인단에 이동근(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필두로 한 법무법인 화우를 추가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공보관, 기획총괄심의관, 사법정책심의관 등을 역임한 이로 화우가 해당 소송 건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대행(?)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심의 패배로 핵심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 측은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지만, 주식가치 산정 오류 등을 발견해 판결문 경정을 이끄는 등 ‘회심의 한방’을 위해 분주한 상황이 전해진다. 

      로펌 업계에서는 여전히 ‘김앤장 교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재산 분할 규모가 큰 오너가의 이혼인 만큼 ‘마지막 기회’까지도 노리는 분위기다. 한 로펌업계 관계자는 “SK 측이 상고 직전까지도 로펌들을 살피면서 타 로펌들도 기대의 끈을 저버지리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노 관장 측은 현재 법률 자문인단 변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통상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이혼소송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재산 분할액의 1~10%를 변호사가 성공 보수로 받는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의 총 성공보수는 재산 분할금의 5%(2심 판결 기준 약 690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