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SK 파이낸셜스토리 시즌1 '따로 또 같이'
입력 2024.07.01 07:0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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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0년 SK그룹 CEO세미나. 이 자리에서 최태원 회장은 ‘파이낸셜 스토리’라는 단어를 처음 꺼내들었다.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심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스토리의 첫 구상은 6년전인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횡령죄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최 회장이 옥중에서 집필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에서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쥐가 들끓어 곤란에 처한 마을이 있었는데 고양이들이 쥐를 잡아 해결해줬다. 쥐를 잡아 오면 대가로 생선을 받는 ‘검은 고양이’와 보상이 없어도 알아서 쥐를 잡아 오는 ‘하얀 고양이’가 있는데 검은 고양이는 경제적 이익을 좇는 영리 기업, 흰 고양이는 사회적 기업을 의미한다. 파이낸셜스토리는 검은 고양이였던 SK를 흰 고양이로 바꾸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셈이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ESG 광풍이 불어닥쳤고 SK의 파이낸셜스토리는 ‘찰떡’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대담한 시도를 하는 그룹은 없었다. 오너는 그룹이 가야할 큰 방향을 제시하고, CEO들은 책임 경영을 한다?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 SK가 머지않아 삼성과 현대차를 앞질러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때도 의심의 목소리는 있었다. 최태원 회장이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파이낸셜스토리를 제창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각 계열사의 CEO들은 순수하지 않다. CEO들이 자리를 지키려면 결국은 ▲M&A를 통한 영역 확대나 ▲IPO를 통한 외부자금 유치 ▲이를 통한 매출과 이익을 성장시키면서도 ▲부채비율은 관리해야 하는 등 숫자로 증명해야 했다. ESG도 그 숫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수준이였을테고 말이다.

      코로나와 ESG가 불러온 레버리지 열풍을 SK 계열사 CEO들은 적극 활용했고 그룹의 외형은 빠르게 커져나갔다. 여기엔 분명 부작용이 있었다. CEO들이 경쟁하듯 영역을 확대해나갔고 계열사간 중복 투자도 이뤄졌다. 오너가 있는 그룹이라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데, SK만의 경영철학인 ‘따로 또 같이’가 가미된 결과다.

      그룹에선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계열사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고, 거기서 승기를 잡는 쪽이 주도권을 쥐면 된다. 이런 과정 역시 파이낸셜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선뜻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워낙 잘 나가고 있을때고 그 깐깐한 재무적투자자(FI)들마저 이런 SK의 투자 방식에 박수를 치고 있었기에 누군가가 딴지를 걸긴 어려웠다.

      역사가 흥미로운 건 언제나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돈이 많이 풀린 뒤엔 다시 거둬들이게 되고 넘치고 넘쳤던 유동성은 다시 메말라 간다. 그리고 SK그룹은 말 그대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방위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중심엔 최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있다. 돌고 돌아 결국 오너가가 해결하는 모양새가 됐다. 친환경 기업에 배치되는 산업을 붙이는 등 이종산업간의 결합도 서슴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기업이 투자자들을 유치할 때 내세웠던 파이낸셜스토리는 폐기되는 걸까. 아니면 이조차도 파이낸셜스토리라고 포장되는 걸까.

      이틀간 진행된 SK의 경영전략회의는 AI와 반도체, 이를 위한 재원 마련으로 귀결된 모양새다. CEO들은 앞으로 중복투자 해소 등을 하는 과정에서 전체 계열사 수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공감하고 각 사별 내부 절차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따로 또 같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SK의 파이낸셜스토리 시즌 1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이 스토리의 저작권이 SK에 있다지만(?) 시즌 2는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라마도 시즌 2가 시작되려면 시즌 1의 흥행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SK의 경우엔 흥미진진했던 극 초반부에 비해 마무리는 힘이 쭉 빠졌으니 말이다. 거기에 여러모로 여론도 최악이다.

      지금 SK그룹은 생존이 최우선과제가 되니 고양이의 털 색깔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일단 쥐를 잡아야 마을이 사니 말이다. 조금은 거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SK에 필요한 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파이낸셜스토리 시즌 2를 기획하고 있다면 제목으로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