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SK이노-KKR, 줄다리기 이제 시작…결국 핵심은 도시가스 손익계산서
입력 2024.07.19 07:00
    SK이노-E&S 통합, 주주총회 및 FI 동의 과제
    E&S에 3조원 이상 넣은 KKR 동의 여부 주목
    '도시가스'가 핵심…회사 "우호적 조건 유지"
    KKR 목표에도 부합…추가 조건 원할지 관심
    합병 SK이노, 사업 한 축·실적 완충 약화할 듯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이 이사회를 넘으며 시선은 다음 과제들로 쏠리고 있다. SK E&S에 3조원 이상을 투입한 KKR과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핵심으로 꼽힌다. KKR의 당초 목표는 도시가스 사업 인수지만 합병 동의 과정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요구할지 관심사다. 합병회사 역시 기존 거래 조건을 유지하길 바라고 있는데, 도시가스를 내주게 될 경우 통합 취지에서 멀어진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각각 이사회를 열어 양사의 합병안을 의결했다. 합병비율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1대 1.2 수준이고 합병기일은 오는 11월 1일이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주주총회에서 특별 결의를 얻는 것이 과제고, SK E&S는 재무적투자자(FI)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SK E&S는 2021년 11월 KKR에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2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2023년에도 KKR 대상으로 7350억원 규모 RCPS를 발행했다. 회사는 이를 통해 그룹의 수소사업 등에 쓸 재원을 3조원 이상 마련했다.

      합병계약에 따르면 ‘합병기일 전까지 KKR(Strada Holdco, Corsa Holdco)이 보유하는 RCPS 전부가 상환 또는 감자돼 KKR이 SK E&S 주주가 아닌 상황’이 돼야 한다. 다만 이는 KKR의 조기 회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KKR의 계약 상대방인 SK E&S가 소멸하는 데 따른 조치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KKR과 관계를 이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기존 RCPS 발행 취지를 유지해 KKR과 우호적인 조건을 계속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합병 전까지 KKR과 협상을 해야 하지만 변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SK E&S 측은 "회사가 소멸하게 되니 기존 관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됐는데, 협상을 통해 합병 회사가 KKR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조건에 따르면 SK E&S는 RCPS 발행 5년 이후부터 조기 상환, KKR은 5년 6개월 이후 전환권 행사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선택에 따라 현금 또는 그밖의 자산으로 자금을 상환할 수 있다. 그밖의 자산은 ▲강원도시가스 ▲영남에너지서비스 ▲코원에너지서비스 ▲전북에너지서비스 ▲전남도시가스 ▲충청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 등이다. 부산도시가스는 상장폐지 등 절차를 거쳐 2023년 상환 예정 대상에 포함됐다. 도시가스가 거래의 핵심이었다.

      KKR의 투입금액을 감안하면 향후 현금 상환 시 4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회사와 회계법인은 현 시점에서 KKR의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할 확률이 매우 낮으며, 상환 시에도 현금상환보다 현물상환(도시가스 7개사)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현물상환 자산 가치는 1조4602억원으로 평가했다.

      SK그룹 입장에선 KKR의 계약 상대방이 SK E&S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바뀌는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이 최선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도 당초 시장 예상보다는 SK E&S 쪽에 불리하게 정해졌다. 상장사에 소액주주가 많은 SK이노베이션의 사정을 감안하고, KKR 쪽 자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KKR 입장에서도 당초 원한 도시가스를 얻는 조건이 유지되는 것이 나쁠 것 없다. 최근 태영그룹의 에코비트 매각에 적극 협조하는 등 시장의 주목을 받는 거래에서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급한 쪽은 SK그룹이고 상황도 바뀌었다. KKR이 합병 동의 과정에서 보다 나은 투자나 회수 조건을 원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내후년에 판단할 도시가스 사업 가치가 ‘투자원금+보장수익률’보다 나아질 것이라 단언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예를 들어 회수 대상의 선택권이 KKR에 주어지게 된다면 SK 측 셈법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SK그룹이 이번 합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 움직임이 있었다. 그 규모는 3조~4조원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KKR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가능성을 살펴본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이 기존의 우호적 조건을 이어가는 경우에도 일말의 부담은 남는다. 회사는 합병 후 석유화학, LNG, 전력, 배터리, 에너지솔루션, 신재생에너지 등을 아우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민간 에너지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인데 몇 해 뒤 사업의 한 축이 약화하게 된다. 안정적 현금흐름을 내는 도시가스 사업이 축소되면 화학사업의 실적 변동성을 완충하기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