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편 '옛 교과서' 꺼내든 두산그룹, 시대착오적 답안지에 역풍
입력 2024.07.30 07:0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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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이다. 1896년 '박승직 상점'을 시작으로 지금의 두산그룹에 이르기까지 13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돌이켜 보면 위기가 적지 않았다. 

      2009년 금융위기 직후 밥캣 인수에 따른 후폭풍과 계열사의 실적 저하로 궁지에 몰렸다. 2011년엔 밥캣 인수 부담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두산건설은 끝내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정부에선 원전 사업이 재검토되며 그룹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금의 두산그룹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컸다. 엄밀히 따지면 투자자와 금융권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미 해체 수순을 밟고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과거 두산과 거래한 투자자들은 일부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9년 두산DST, SRS코리아, 삼화왕관, KAI 등 계열사를 묶어 외부에 매각하며 그룹에 긴급 자금을 수혈한 거래는 아직도 M&A의 교과서로 불린다. 투자자들은 1년 만에 재매각을 추진했고 굵직한 거래들로 인해 투자사들은 자본시장에서 주목하는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이는 금호그룹과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서도 차용했을 정도로 기업이 사모펀드(PEF)를 활용한 성공 사례로 아직도 회자된다.

      물론 투자자와의 갈등도 있었다.

      밥캣의 인수부담이 지속하자 그룹은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와 두산캐피탈을 또 PEF에 매각했다. 당시 투자자와 약속했던 기업공개(IPO)와 공개 매각이 모두 무산되면서 길고 긴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소송전은 결국 두산그룹 승리로 결론이 났다. 사모펀드와 재벌 기업간의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난 첫 사례이자, 두산그룹에 대해 투자자들이 재평가를 시작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원전 사업이 중단된 이후 그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을 당시, 두산에 우군으로 불릴만한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거의 없었단 점은 자본시장에서 두산그룹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다행히 현 정부가 들어서며 그룹은 재건사업을 시작했다.

      두산은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활용하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개인과 기관, 외국인투자자와 금융권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금융감독원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들끓는 상황. 두산그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키고 있단 비판이 나오자 정치권에서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개편의 핵심으로 꼽히는 두산밥캣에서 대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했고 지배구조개편의 성공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시점에서 두산그룹이 풀어내야 할 숙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만명의 주주들, 금융기관과 투자자,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등 두산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은 셀 수도 없다. 과거 몇몇의 PEF 운용사와 테이블에 앉아 숫자를 두고 협상을 통해 풀어낼 수준이 아니다.

      '현행법에 근거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계산으론 어떤 형태의 투자자도 설득할 수 없다. 연간 1조원을 넘게 벌어들이는 기업(두산밥캣)의 주주들에게 100원도 이익을 못내는 회사(두산로보틱스)의 주식으로 바꿔주겠단 계획을 받아들일 투자자가 몇이나 될까?

      핵심 사업을 떼내야하고(두산에너빌리티), 차입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두산로보틱스), 그리고 적자기업의 주식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인 주주들(두산밥캣) 모두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지만 그룹의 정점에 있는 ㈜두산 주주들은 이런 논란에서 동떨어져있다.

      ㈜두산 주주들은 캐시카우인 밥캣에 대한 간접 지배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로보틱스-밥캣의 합병을 통해 배당을 한 계단 걷어냄으로써 누릴 수 있는 효과가 뚜렷하다. ㈜두산은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사실 그룹 또는 오너 차원의 실익은 계열사 투자자들과 별개의 문제다.

      현금을 벌어들이는 밥캣의 투자자와 성장성에 기대 투자한 로보틱스 투자자들의 성향이 180도 다르듯, ㈜두산과 계열사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전혀 다르다. 지배구조 개편의 수혜가 어디로 향할지 명확한 상황에서, 모호한 시너지를 내세워 밥캣과 로보틱스의 주주들을 한데 묶겠단 계획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단 평가가 나온다.

      이번 구조 개편이 그룹의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했다면, 개별 투자자들이 납득할만한 배경과 명분을 정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 시장에서 형성된 기업가치를 활용한 '현행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각 투자자들의 실질적인 이해 관계를 따라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단 의미와도 같다.

      "실체가 모호한 시너지를 믿고 우리의 계획에 동참해 주십시오"라는 행태는 무책임하다. 이미 어설픈 계획으로 인한 주가하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또 다시 발표될 두산그룹의 (수정)계획안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투자자들 사이에선 벌써 불안감이 감돈다. 점점 더 예측불가능한 기업이 되고 있단 투자자들의 인식은 두산이 감수해야 할 무형의 손실이다. 

      주주들은 오너와 한 배를 타지 않았다. 오너는 과거 130년에 이어 또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언제든 두산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오너와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합치하지 못한다면  두산은 주주들의 실익을 따로 또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최근 그룹을 향한 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읽어내지 못한데 따른 경영진들의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다. 일련의 계획들이 실익이 명확한 소수의 결정으로 잘 짜맞춰진 것이라면 두산은 독선에 대한 견제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위태로운 상황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