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합병은 되겠지만…늘어날 FI 관리 부담이 골치
입력 2024.08.02 07:00
    KKR 동의 끌어낸 듯…기관도 사정 참작하는 분위기
    합병 주총은 통과할 듯…문제는 통합 SK이노 출범 후
    SK이노로 FI 총집결…원금만 7조, 약속한 조건 제각각
    합병 효과 희석 불가피한데 SK온 상장 채비도 갖춰야
    통합 SK이노 출범하면 효과 증명에 사활 걸어야할 것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이 SK E&S 흡수합병을 위한 절차를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고 있다. 합병 비율을 두고 잡음이 일었지만 투자가 사이에선 불가피한 내부 사정을 참작하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오는 27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 자체는 무리 없이 치러질 거란 관측이 많다.

      이미 관심은 통합 SK이노베이션이 전담해야 할 다수 재무적투자자(FI) 관리 문제로 이동 중이다. KKR은 합병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고 있다. 진짜 부담은 합병 이후 FI 관리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1일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자 설명회를 열고 "SK E&S가 KKR에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이번 합병에 영향이 없도록 한다는 원칙하에 구조화를 진행 중이다"라며 "현물상환, 현금상환 등 의사결정권은 모두 회사에 있다. RCPS 구조 변경이 마무리되면 추후 공시하겠다"라고 알렸다. SK E&S가 KKR과 RCPS 조건을 두고 논의 중이란 설명인데, 이미 합병 동의 자체는 구한 상태로 풀이된다. 

      합병 주총을 앞두고 기관 분위기도 크게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3년 3분의 1토막으로 줄어든 SK이노베이션을 시가로 평가하면서 합병비율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여전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탓이다. 자회사 SK온 때문에 마주해야 할 잠재부실 규모를 감안하면 합병 외엔 답이 없다는 설득이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는 평이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비슷한 이유로 눈총을 사는 두산그룹에 비하면 명분 자체는 성립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라며 "연기금 등 큰손들도 합병비 산출 과정에서 문제 삼을 대목을 다수 발견했지만,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닌 FI와 주총 표결을 좌우할 기관을 포섭하고 나면 남는 것은 반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처리다.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10거래일 동안 접수한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8000억원 이하면 계획대로 합병을 성사시킬 수 있다. 매수예정가격 11만1943원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반대 지분이 발행주식 총수의 7.5%를 넘기지만 않으면 된다.

      합병보단 이후 늘어날 FI 관리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자회사 SK엔무브와 SK온을 통해 IMM크레딧솔루션,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컨소시엄, MBK컨소시엄 등 국내외 다수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FI로 모셔 왔다. SK E&S를 흡수합병하고 나면 여기에 KKR이 가세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 FI마다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시중금리 이상의 최저수익 기준을 약속받았다.

      가장 부담이 되는 건 KKR이다. 이번 합병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종전보다 더 유리한 지위에 올라섰다. KKR은 3조1000억원 규모 RCPS를 통해 ▲매년 배당 형태로 3.99% 수준 이자를 수취하거나 ▲5년 후 SK E&S의 7개 도시가스 자회사를 인수하거나 ▲투자 원금에 연 복리 9.9% 이자를 붙여 현금으로 받아 갈 수 있다. 상환·전환 모두 일어나지 않을 경우 통합 SK이노베이션이 연간 부담해야 할 금액은 투자 원금의 9% 수준으로 튀어 오른다.

      현금 상환에 따른 보장수익률이 연 복리 9.9%로 올라간 만큼 해당 선택지는 사실상 유명무실화했다는 평이 많다. 결국 통합 SK이노베이션은 도시가스 7개 자회사를 KKR에 넘기거나, 매년 3000억원 수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어느 쪽이건 SK E&S 흡수합병으로 유입될 현금흐름의 상당 부분을 KKR에 양보해야 하는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보장수익률이 기존 7.5%, 9.5%일 때도 현금상환은 불가능하다는 시선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도시가스 자회사를 떼주거나 배당을 더 주는 선택지만 남았다"라며 "SK E&S 사업 절반을 일시에 넘기느냐, 매년 3000억씩 송금하느냐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합병으로 기대되는 재무개선 효과 희석이 불가피하지만, 이 상태에서 SK온 상장 채비도 갖춰야 한다. SK온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에 참여한 FI들은 약 2조8000억원 규모 전환우선주(CPS)를 보유하고 있다. RCPS를 인수한 KKR과 달리 이들은 SK온이 적격상장 요건을 충족해야 회수에 나설 수 있다. 투자 유치 당시 이들에게 약속한 보장수익률은 연 복리 7.5%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이 회수를 보장해야 할 투자금 총액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개별 FI들의 견제·감시도 한층 거세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FI 역시 지난해 그룹 계열사에서 불거진 11번가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포기 사태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투자 원금 총액이 11번가의 열두배에 달하는 만큼 초조한 건 FI도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풀이된다.

      여러모로 통합 SK이노베이션이 출범하고 나면 전사 차원에서 사활을 걸어야 할 거란 지적이 많다. 과거 SK온 물적분할, 증자 과정에 이어 이번 합병까지 참여한 주주들 역시 하반기 이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늘어난 FI뿐 아니라 이들에게도 회사가 약속한 합병 시너지와 SK온 정상화 등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사 배터리 담당 한 연구원은 "SK온 사업이 정상화하고 IPO까지 마치려면 미국 등 주요 시장 정책부터 고객사 전략, 최종적으로는 배터리 사업 멀티플 등 시장 가격까지 운도 상당히 따라줘야 한다"라며 "합병하고 나면 SK이노베이션은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