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 면피용, 법원은 압박용…아직도 남의 돈으로 살아날 수 있을거란 큐텐의 착각
입력 2024.08.05 07:0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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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큐텐의 스토리는 사실 남의 돈으로 쓰여져 왔다.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를 지분교환 방식으로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고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던 큐익스프레스 역시 외부 재무적투자자(FI) 유치로 성장했다. 위시의 인수자금엔 계열사의 정산대금이 쓰였다.

      물론 큐텐그룹이 쿠팡과 같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 또는 그에 준하는 위상을 갖추게 됐다면, 자본시장을 활용한 사례로 또 하나의 교과서로 기록됐겠지만 이미 실패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기업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다. 이와 동시에 검찰은 두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구영배 대표가 국회에 출석하자 검찰은 구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거 동양사태를 떠올렸다는 투자자들과 일종의 폰지 사기로 보는 시각이 등장했다.

      일단 구 대표의 구속을 비롯해 책임소재를 묻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이번 사태가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느냐가 먼저다.

      구 대표는 국회에 출석해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800억원이지만 바로 정산 자금으로 쓸 수는 없다"며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큐텐그룹이 보유한 800억원의 자금을 담보로 중국 현지 또는 국내 기관에서 대출을 받는 방안과 큐텐의 지분을 담보로 자본을 조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 상태다.

      사실 구 대표는 이미 사태를 예견하고 수면 아래서 분주히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해외에서 자금 조달을 추진해 온 것으로 파악되는데, 홍콩과 싱가폴 등지에서 주요 금융기관들과 접촉해 자금조달을 논의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중국 현지에 자금이 묶여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구 대표가 출국금지 상태에서 직접 해결하긴 쉽지 않다. 최대 800억원의 자금만으론 현재 사태의 봉합하기 어렵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루가 다르게 가치가 떨어지는 큐텐의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 대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고액자산가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내일의 기업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큐텐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단 계획은 '허상'에 가깝단 평가다.

      실제로 15~20%의 높은 이자율로 한계에 봉착한 기업들에 자금을 빌려주는 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큐텐의 지분을 담보로 잡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며 "구 대표의 개인 자산을 담보로 잡으면 모르겠지만 구 대표의 자산이 언제 동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리스크를 짊어질 투자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태 해결을 위해 (혹시 있을지 모를) 숨겨진 재산을 꺼내면 그 즉시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마저도 어렵다"고 했다.

      이 와중에 티몬과 위메프의 매각설이 등장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한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겠단 계획이 전해졌는데 알리 측이 "검토한 바 없다"고 즉각 선을 그었다.

      경영권 매각과 관련해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는 구 대표가 아닌 류화현 공동대표의 의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는 "류 대표가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매각을 추진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이미 입점업체들이 떠났고 또 단체 소송을 준비하는 상황. 소비자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C커머스 기업들이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 인수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거의 없다. C커머스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탓에 유통·플랫폼 M&A 과정에서 잠재 매수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성사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자본이 결코 눈 먼 돈이 아니란 의미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11번가, G마켓, SSG닷컴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은 생존 전략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처지다. 쿠팡의 독주가 더 가속화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큐텐 사태를 기회로 삼지도 못하는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한계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기업회생절차개시를 신청했다. 법원은 포괄적금지 명령을 내리고 모든 채무를 동결했다. 두 회사는 자율구조조정프로그램(ARS)도 신청했는데, 이는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리기 전 3개월 동안 채무가 동결된 상황에서 채무자가 자체적으로 채권자들과 협의할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현 시점에서 티몬과 위메프가 의지할 곳은 법원이 유일하다.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권한은 법원으로 이관된다. 회사의 볼펜 하나까지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회생절차가 시작된다. 관리인을 선임하고 실사를 진행해 인수자를 찾는 일까지 일일이 법원의 손을 거쳐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채무를 모두 갚지 못할 상황이 예견돼 있기 때문에 회사가 살아날 방법은 채권을 조정 받고 재무제표가 깨끗한 상태로 재기를 노리는 것 뿐이다.

      만약 법원이 개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임의적 파산선고를 내리게 된다. 이 때부턴 빚 잔치의 시작이다.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 매각 추진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현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매각을 통해 회사를 살리겠단 '의지(?)'와 나름의 계획을 나타냄으로써 법원의 개시 결정을 이끌어 내겠단 뜻으로 해석된다.

      국회에 출석한 구 대표가 상환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채무를 갚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티몬과 위메프의 합병 후 채권을 전환사채로 전환하는 방안, 대출을 통해 정산대금을 마련하는 방안, 구조조정 펀드를 활용하거나 경영권을 매각하는 방안의 현실 가능성은 희박하다.

      궁지에 몰린 경영자의 마지막 소임일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남의 돈으로 살아날 수 있단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한 듯 보인다. 돈은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곳에 몰린다. 정상화(?) 방안으로 포장된 실체 없는 대책들이 국회에선 그럴싸한 '면피용' 카드로 쓰이고,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 '희망 고문'이 되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