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삼성전자-SK하이닉스 HBM 경쟁 두고 폭증하는 변수들
입력 2024.08.06 07:00
    "엔비디아 AI 반도체 구매에 쓸 돈도 바닥날 수 있다"
    엔비디아 따라서 널 뛰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 주가
    너무 비싼 AI 학습비용…배터리와 입장 유사한 HBM
    삼성전자 필요성 커지는 엔비디아…허들 낮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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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하반기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쟁의 최대 승부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인공지능(AI)에서 앞서간 쪽이 다음 기술 패권을 쥐게 될 것이란 전망에 변함이 없고, 여기서 반도체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처럼 AI 시장에서 입장료 걷는 대열에 합류하려면 HBM에서 SK하이닉스부터 따라잡아야 한다. 그러나 각국 시중금리부터 리더십 교체, 지정학 불안 속에 단기적인 AI 시장 판세가 흔들리면서 변수가 널을 뛰기 시작했다. 

      지난 31일(현지시각) 12.81% 급등한 엔비디아 주가는 다음날 다시 6.67% 하락했다. 5일 장외거래에선 정규장 종가보다 7%가량 떨어지며 100달러선이 깨졌다. 한 달여 전 기록한 사상 최고치(주당 134달러)보다 25% 이상 하락했다. 

      작년 이후 엔비디아 주가가 계속 오르기만 했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나, 변동성이 지나치게 높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변동으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값싼 엔화로 투자한 해외 자산) 청산을 빌미 삼아 AI 시장 전망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작년 이후 AI 시장으로 흘러간 자금 상당수가 엔비디아 칩 구매에 쓰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AI 서비스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러나 최근 실적 시즌을 거치면서 돈은 언제 벌 것이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칩을 사들일 돈도 언젠가는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단 얘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 테크들의 올해 자본적지출(CAPEX)은 작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지난 2018년 데이터센터 붐 수준으로 상승세가 가파르진 않지만 금액만 놓고 보면 당시 세 배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럼에도 AI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눈 깜짝할 새면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고 있지만 AI 학습에 투입된 자금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자연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도 한 묶음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빅 테크가 엔비디아 칩 구매를 쉬어가기 시작하면 양사도 HBM 판매처를 잃게 된다. 양사 모두 전일 엔비디아 주가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연관성이 더 높은 SK하이닉스 주가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출렁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경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처럼 AI 시장도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가 불거지는 모습이다"라며 "챗GPT 같은 생성 AI가 게임 체인저가 될 건 분명한데, 확실한 사업모델(BM)이 등장하지도 않았고 온디바이스 AI는 제대로 구현하는 곳이 없다. 늘어난 HBM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설비투자를 늘려놓은 게 전기차 배터리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가 작년 이후 삼성전자 수익성을 뛰어넘고,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 주가흐름에서 벗어난 건 HBM 덕이 대부분이다. 엔비디아향 독점적 공급사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관련 설비투자를 늘려도 공급과잉 우려가 불거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같은 D램이어도 HBM 실적에만 프리미엄이 따라붙었다. 종전 투자가들이 메모리 공급사가 투자를 늘릴 때마다 업황 우려를 제기했던 것과 정반대다.

      엔비디아의 판매가 주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기차 수요가 꺾이면서 계약대로 생산해둔 배터리가 재고로 쌓이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HBM은 AI 서버 시장에 특화한 제품이기 때문에 전방 빅 테크들이 지갑을 닫으면 대안을 찾기 어려워진다. 엔비디아 외에도 AI 가속기를 설계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는 있지만 엔비디아 수준 파괴력을 갖춘 곳은 없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의 엔비디아향 HBM 공급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진다. 엔비디아 내부적으로도 전방 빅 테크들의 구매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칩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외에 삼성전자까지 HBM 공급사로 합류해야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 외국계 기관투자가는 "엔비디아가 AI 서버 시장에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돈을 벌려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이미 작년부터 나왔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계속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여전히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엔비디아가 품질 측면에서 크게 타협할 수도 있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로선 엔비디아 문턱이 낮아질 때 최대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시장 전망이 흔들리고 있어도 AI 서버 시장 자체는 HBM 기반 AI 가속기가 대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급사로 합류하게 될 경우 SK하이닉스 수준 단기 수혜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SK하이닉스의 추격을 주춤하게는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가 이번 기회마저 놓칠 경우 시장 혼란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의 독점 구도가 길어질수록 AI 시장의 고비용 구조만 부각될 수 있는 탓이다. 삼성전자로선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힘든 수준의 평판 부담을 져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