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늘리겠다지만 '명성' 뿐…수수료 증가는 기대 어려울 듯
인력 이탈 때문…ELS 사태 등 뒷배 약화에 경쟁력 확보 절실
-
국내 4대 금융지주들이 자산운용사 키우기에 나서고 있지만, 업계 내 존재감은 여전히 미미하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는 등 대체투자를 늘리기엔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 운용보수 또한 박해지면서 운용사들의 살림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긴 하다. 다만 은행계 운용사들의 성장은 유독 더디다.
금융지주 계열사 일임자산을 맡고 있는 것으로 만족,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는 덴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쟁사들이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순익 개선에 성공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ETF에 공을 들이는 모습도 나타나지만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하반기 증시 예측이 어려운 가운데 고유재산 투자 역량 또한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4대 금융지주 실적 발표 결과에 따르면 업계 순위권 운용사 대비 은행계 운용사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1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반기에 2000억원 이상의 영업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면 은행계 운용사들은 최대 300억~400억원 수준의 순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운용사의 주 수익원은 '운용보수'다. AUM이 늘어나면 이를 통해 수취하는 수수료를 기반으로 영입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은행 등 판매자 우위 시장이 되면서, 펀드 수익률의 절반 이상을 판매사가 가져가는 등 운용사의 수익성에 기여하는 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펀드매니저가 유망 종목을 골라 담아 투자하는 액티브 주식형펀드의 경쟁력이 부족해지면서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된 것 또한 운용사 수익성에 영향을 미쳐왔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판매사 측에서 판매수수료가 낮은 펀드는 잘 안 팔아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운용보수만으로 돈을 벌기는 어려워졌다"라며 "이에 고유재산 투자운용의 중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었다"라고 말했다.
상반기 은행계 운용사들의 고유재산 운용 성과는 이익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계 자산운용사 중 가장 큰 운용자산(AUM)을 보유한 KB자산운용을 비롯, 대부분의 은행계 운용사들의 수수료이익이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KB자산운용은 1분기 대비 2분기 실적이 다소 줄어든 것과 관련해, "1분기는 증시 호조로 고유재산 투자 평가이익이 반영됐지만 2분기부터는 시장 상황이 변하며 투자 이익 규모가 감소했다"라고 밝혔다.
그나마 은행계 운용사 중 올 상반기 실적이 눈에 띄는 신한자산운용의 경우 지난 1년 새 ETF 관련 자산을 1조5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까지 늘린 덕을 봤다는 평가다. 이런 까닭에 타 운용사들도 ETF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기준 ETF 시장은 120조원 규모를 돌파했다.
하나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KB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대표가 교체된 바 있다. 이후 이들은 ETF 리브랜딩 및 ETF 사업 확대에 일제히 나섰다.
다만 높은 비용이 투입되야하는 등 박한 마진은 한계다. 미래에셋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의 시장 선점 효과가 공고한 상황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에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투자신탁운용 만큼의 리브랜딩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 '1Q'로 ETF 명을 바꾼 하나자산운용의 ETF시장 순자산가치총액 총액은 5월 7757억원에서 7033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순자산가치총액은 8조9000억원 수준에서 10조원대로 오르며 KB자산운용(11조7000억원)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ETF명을 바꾸고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으며 업계 3위인 KB자산운용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AUM이 오르면서 은행계 운용사들도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하지만 리브랜딩을 통해 ETF 인기를 크게 끌어올리며 AUM을 확대하는 전략은 모두에게 유효하진 않다"라고 말했다.
ETF나 대체투자를 제외하곤 차별화된 전략을 내놓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KB자산운용에 새로 취임한 김영성 대표는 ETF 부문 정상화를 과제로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KB자산운용은 지난해 핵심 인물이었던 차동호 ETF솔루션운용본부장이 퇴사를 하고 외부 인사인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 본부장을 영입하면서 인력이 지속 이탈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정상화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란 평가가 많다.
연초 법인합병으로 AUM을 끌어올린 우리자산운용은 대체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하 성장금융) 인력을 영입하기도 했다. 3월 취임한 최승재 대표이사 또한 멀티에셋자산운용에서 대안투자팀장, 글로벌대체투자본부 상무를 거친 인물이다. 신한자산운용 또한 그간 주력해온 대체투자를 확대하면서도 ETF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같은 차별화 부재는 인력 이탈이 주요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액티브 펀드 회의론이 짙어지며 펀드 매니저들이 운용업계를 떠나 벤처캐피탈(VC) 등으로 둥지를 지속해서 옮겨왔다는 설명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의 운용역은 지난해 7월 73명에서 올해 7월 65명으로, 신한자산운용은 56명에서 54명으로 줄었다. 최근 운용사에 영입되는 펀드매니저들은 대부분 ETF 관련 인력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와중 부동산 시장 악화로 대체투자를 확대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년 전과 비교해 요즘은 은행계 운용사에 핵심 인물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라며 "액티브 펀드가 인기가 시들해지고 ETF나 패시브 펀드에 자금이 몰리면서 운용업계 자체가 많이 힘들어진 부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말했다.
은행계 계열사에 만연하다고 알려진 '보신주의' 또한 이유로 거론된다. 일각에선 은행계 운용사들은 계열사 캡티브를 통해 수취하는 수수료 만으로도 일정 부분 수익성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은행에만 기댈 순 없는 상황이라 운용사 내부적인 부침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사 평가에 외부 자금 유치가 KPI로 포함되는 등 영업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홍콩H지수 주식연계증권(ELS) 사태 여파 또한 은행계 운용사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ELS 사태 이후 은행들이 펀드 판매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면서 은행 창구를 통해 펀드 상품 판매하도록 독려하는 분위기가 한 풀 꺾였다는 설명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앞으로 운용사의 실적은 고유재산 운용 실적에 달려있을 정도로 수익원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ETF도 지금은 증시가 좋으니 자금이 몰리지만 증시가 부진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라며 "성장을 과제로 안고 있는 은행계 운용사들 또한 수익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