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업장도 유찰行…정부 PF 경·공매 압박, 시장과 '엇박자'
입력 2024.08.12 07:00
    합정동 부지, 840억→500억에도 '유찰'
    당국, 부실 사업장 경·공매 주기 단축 압박
    유찰되면 가격 낮아져…의도적 유찰 우려
    저축銀 등 제2금융권 손실 불가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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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실우려 사업장에 대한 경·공매 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시장 눈높이에 맞는 입찰가격을 통해 거품이 사라지면, PF 경·공매가 활성화 될 것이란 것이 당국의 기대다.

      다만 당국의 기대와 달리 수도권의 괜찮은 사업장도 경·공매에서 유찰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유찰되면 향후 더 저렴한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유찰시키는 일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금리 인하만 기다리며 버텨왔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는 '손실을 금융기관이 다 떠안으라는 것'이란 볼맨소리도 나온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부지가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해 공매 절차를 밟았지만, 최종 유찰됐다. 해당 부지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373-12 외 3필지로, 1회차 입찰가인 842억원에서 최종 8회차 입찰가가 500억원까지 낮아졌지만 마지막까지 입찰자가 없었다.

      해당 부지는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개발을 위해 제이아이앤제이와 포인트컨설팅, 투윤건설 등이 매입했지만, 토지를 담보로 일으킨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EOD가 발생했다. 오케이저축은행, JT저축은행, KB저축은행, 우리금융저축은행, 대신저축은행, 모아저축은행, 신한저축은행 등이 대주단이다.

      이처럼 서울이나 수도권 인근의 상대적으로 우량하다고 평가받는 매물도 공매에서 유찰되는 데는 당국의 정책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9일까지 부동산 PF 사업장 중 사업성 평가 최종 등급이 유의(사업진행 차질) 또는 부실우려(사업진행 곤란) 등급에 해당하는 모든 사업장에 대해 재구조화 및 정리계획을 제출하라고 금융권에 지시했다. 해당 지침에는 재구조화·정리 이행 완료 예정일을 계획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설정하라고 명시돼있다.

      경·공매 관리 기준도 대폭 강화됐다. 현재는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을 대상으로 3개월 단위로 경·공매를 진행하는데, 앞으로는 대출 원리금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부실채권으로 분류하고 1개월마다 경·공매를 통해 처분에 나서야 한다. 6개월 이내로 완료해야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는 공매의 경우 재입찰시 직전 유찰 가격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책이 시행되는 이달부터는 최초 1회의 최종공매가는 장부가액으로 설정하되, 유찰 후 재공매 때는 직전 최종공매가보다 10% 낮게 설정해야 한다. 유찰될 때마다 가격이 떨어지는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업계가 어렵다고 해도 서울과 수도권 인근의 괜찮은 사업장 일부를 한정해서는 매수세가 있었고, 매입 논의가 진행되는 곳도 있었다"라며 "다만 당국이 정책 시행을 예고한 이후로는 이러한 논의가 중단됐다"라고 말했다.

      경·공매를 강제해서라도 PF 시장의 거품을 꺼뜨리려는 당국의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부실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능은 하겠지만, 헐값에 담보를 매각해 발생하는 손실은 고스란히 금융기관의 몫이다. 이러한 불만은 토지담보대출을 늘려왔던 저축은행업권을 위주로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토담대 연체율은 20%를 넘어섰다. 당국은 현재 저축은행의 토담대를 사실상 브릿지론으로 보고,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다만 저축은행은 금리인하만 바라보고 버텨왔는데, 금리인하를 목전에 두고 경·공매를 압박하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리인하가 되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란 기대감에 힘들어도 충당금을 쌓으며 버텨왔는데, 갑자기 경·공매를 강제하면 헐값 매각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이번 달부터 경·공매 물건이 쏟아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물량을 받아줄 PF 정상화 펀드의 자금 여력도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금융당국이 추산하는 사업성 평가 대상 PF 사업 규모는 약 230조원인데, 그 중 경·공매가 필요한 사업장은 약 2∼3%에 해당한다. 최대 7조원 규모가 경·공매로 나오는 셈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약 1조 규모의 캠코 PF 정상화 펀드에 기타 금융권 펀드를 모두 합쳐도 최대 2조 정도인데, 7조원 가량의 경·공매 물량을 어떻게 다 떠안을 지 의문"이라며 "결국 은행과 보험사 등 우량 금융권이 나서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