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이어진 우리금융 '손태승 지우기'...수혜자는 상업은행 라인과 임종룡 회장?
입력 2024.08.13 07:00
    Invest Column
    감독원 검사는 제보로 시작...결과 발표하자 우리은행 즉각 "다 맞는말"
    금융권에선 내부의 해묵은 한일ㆍ상업 갈등 재점화를 배경으로 지목
    최근 상업 라인 득세…이광구 행장 시절 한일에 대한 '복수극' 거론
    임 회장은 연세대 코드인사 집중…갈등 묵인하면 상업 라인 충성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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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잇따른 횡령 등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우리은행 내부에선 옛 한일은행 출신(박구진 전 준법감시인)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상업은행 출신(전재화 준법감시인)이 임명됐습니다. 이보다 더 상징적인 장면이 있을까요?"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

      우리금융그룹이 '손태승 이슈'로 시끌벅적하다. 전 은행장이자 전 지주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향유한 '특혜'가 뒤늦게 이슈화됐다. 우리금융의 연이은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고, 곧바로 임종룡 회장 명의의 사과와 반성문이 발표됐다. 

      그럼에도 불구, 칼 끝은 손 전 회장을 향해 있다. 전임 회장이 '악당'으로 간주될수록 현직인 임 회장의 취임 및 연임이 정당화되는 분위기다. 

      금융업계에서는 사태의 배경을 해묵은 한일ㆍ상업은행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상업 라인이 한일 라인에 대해 복수극을 벌어는 차원에서 2년전 사안이 제보되고, 임 회장이 이를 묵인하면서 상업 라인의 충성을 받는 형태 아니냐는 해석이다. 

      관련 제보로 시작된 검사...우리은행서는 '상업' 출신이 요직 독점

      금융감독원은 11일 우리은행에 대한 대출취급 적정성 수시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에 42건, 616억원의 대출이 집행됐고, 이 중 28건, 350억원이 부적정하게 취급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금감원 조사의 특징은 '제보'로 시작됐다는 점이었다. 금감원은 6월께 관련 제보를 접수한 후 곧바로 현장조사에 착수, 두 달만에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건은 이미 1분기 우리은행이 자체 검사를 통해 적발, 담당 본부장을 면직하는 등 중징계 처리가 끝난 사안이었다. 그러다보니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대해 별도의 후속조치 계획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전부터 추진해 온 '지주ㆍ은행 지배구조 제도 개선' 작업에 반영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책 정도였다.

      손 전 회장에 대한 움직임은 앞서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한 시민단체가 손태승 전 회장이 중징계를 받고도 우리금융지주와 고문 계약을 체결했다며 금융당국에 고발했다. 손 전 회장은 2주만에 고문직에서 사퇴했다. 당시에도 내부자가 아니면 '2년간 연봉 4억원 규모'라는 계약의 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부자의 제보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바 있다.

      손태승 전 회장 재임 시절은 한일은행 라인이 득세하던 때에 해당된다.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은 상업은행 출신인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과 반목했다. 그리고 2022년 한일은행 출신인 이원덕 지주 부사장을 우리은행장으로 내정했다. 

      이 과정에서 상업은행 출신 임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앞서 2010년대 중반엔 이순우ㆍ이광구 등 상업은행 출신이 잇따라 행장을 맡고, 한일 측에 맡길 것이라 예상했던 수석부행장을 없애며 한일 쪽에 상당한 불만이 쌓이기도 했다"며 "이광구 전 행장의 중도퇴진이 한일 측의 제보 탓이었다는 말이 많았는데, 이번엔 손 전 회장이 반대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설움을 겪던 상업은행 라인은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득세하기 시작했다. 

      당장 조병규 행장이 상업은행 출신이고, 영업의 핵심인 부문장 두 자리도 모두 상업 출신인 기동호ㆍ김범석 부행장이 담당하고 있다. 재무책임자(CFO)인 유도현 부행장과 리스크책임자(CRO)인 박장근 부행장 역시 상업 출신이며, 내부통제의 핵심인 준법감시인도 지난 7월 상업 출신인 전재화 부행장으로 교체됐다. (아래 관련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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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회장은 취임 직후 우리은행 내 이른바 파벌 경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되레 '특정 계파(상업)가 상대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막강해진 상업은행 라인이 세력을 업고 이광구 행장 시절 겪은 일에 대한 일종의 '복수극'으로 풀이되는 분위기다. 

      곧바로 사고 시인한 우리금융...임 회장은 코드 인사 지속

      임 회장은 이런 혼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금감원의 수시검사 발표 직후 우리은행은 곧바로 사실 관계를 시인했다. 실제 손실 예상액은 최대 158억원이며, 차후 내부제보 등 업무처리절차와 여신 감리를 강화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12일에는 임종룡 회장이 직접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드린다"며 "시장의 의구심이 있다면 사실에 입각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회장 후보로 나선 당시부터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임 회장 입장에선 전임자인 손태승 회장의 흠결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본인의 취임이 정당화된다"며 "내년 말 연임 도전까지 고려하면 현 상황이 임 회장에겐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임 회장은 학연ㆍ지연 인사를 통해 그룹 내 본인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분위기다. 지난 3월 연세대 경제학부 후배인 최윤정 교수를 은행 사외이사로 위촉한 사례가 회자된다. 최 이사를 추천한 건 정찬형 이사인데, 정 이사가 지주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 회장이 최소한 인지, 혹은 관여했을 거란 '뒷말'이 적지 않다.

      우리금융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엔 임 회장이 주영국대사관 주재 참사관 시절 대우증권 런던지점장으로 연을 맺은 남기천 대표를 중용했다. 우리투자증권 사외이사 4명 중 3명이 연세대 출신이며, 향후 중점 육성할 예정인 IB부문 총괄로도 연세대 출신 양완규 전 미래에셋증권 대체투자금융 부문대표를 영입했다.

      최근 우리금융은 주가에 실망한 과점주주들이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사회도 지주회장의 '거수기'로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여기에 상업 계파 임원들의 충성이 이어지고, 동시에 임 회장이 고른 연세대 출신 인사들이 득세할 경우. 이제 우리금융 내에서 임종룡 회장을 견제할 세력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지난해 연세대 법무대학원에 '그룹 내부통제 전문가과정'을 의탁 신설한 것을 두고 '회장 모교 사랑이 극진하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며 "지속적인 인사 잡음과 금융사고로 인한 브랜드 평판 저하는 결국 주주들의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1년 5개월 동안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오히려 취임 전 대비 3.5% 하락했다. 주주환원책 발표 직후 잠시 급등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상승폭을 모두 반납한 채 약보합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