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중단' 러시아서 올림픽 조연 'Z플립' 홍보하는 삼성전자
입력 2024.08.14 07:00
    취재노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홍보효과를 거둔 올림픽 공식파트너사 중 하나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사진을 찍는 일명 '빅토리 셀피' 마케팅을 통해 삼성전자의 신제품 'Z플립6'를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재용 회장이 귀국 직후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고 자평할만큼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파리 올림픽에는 206개국에서 1만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지만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초청 받지 못했다. 두 국가의 군대와 연관 없는 일부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했지만 국기와 국가를 사용할 수 없었고 단체전 출전도 금지됐다. 메달을 획득하더라도 순위는 집계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전쟁 발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제재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외국기업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의 원천 기술을 사용했다면 수출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FDPR 규제를 적용해 대(對)러시아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FDPR 면제 대상국의 기업 상당수도 직접적인 제재와 무관하게 일단 러시아의 공급, 생산,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러시아에서 철수한 외국계 기업은 약 1503곳이다. 영업을 중단한 기업은 약 940곳, 축소한 기업은 약 670여곳이다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삼성전자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 중단을 선언했고 아직까지도 제품을 공급하진 않는다.

      삼성전자는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제품을 판매하진 않지만 신제품 홍보는 진행중이다.

      이번 올림픽 시즌에 맞춰 출시한 '갤럭시 Z시리즈' 신제품은 삼성전자 러시아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배치했고 디자인과 스펙 모두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판매만 이뤄지지 않을뿐 제품의 소개는 타국가와 차별점을 느끼기 어렵다.

      러시아 자국민들에 대한 배려(?)도 옅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타국가 홈페이지에선 2024년 파리올림픽의 공식스폰서로서 파리올림픽 홍보 영상과 함께 '삼성 갤럭시 팀'의 일원인 ▲안세영(한국 배드민턴) ▲손흥민(한국 축구) ▲신유빈(한국 탁구) ▲오를리앙지로(Aurélien Giraud, 프랑스 스케이드보드) ▲사라비(Sarah Bee, 프랑스 브레이킹) ▲요한디페이(Johanne Defay, 프랑스 서핑) 등 서방국가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러시아 홈페이지엔 게시하지 않은 상태다.

      이제까지 삼성전자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상당히 기민하게 대응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군의 무기에 표기된 'Z' 표식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자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발트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의 제품명에 'Z'를 삭제하고 '갤럭시 플립5(폴드5)'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는 'Z'표식이 '러시아 군' 또는 '러시아의 승리'란 의미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식의 정확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승리를 위하여'란 뜻을 지닌 러시아어 '자파비에두(Za pobedu; За победы)'의 앞글자 또는 러시아 군의 진격 방향인 서쪽을 의미하는 '자파드(Zapad; Запад)'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가 우크라이나 등에서 제품명을 바꿔 출시하자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면서 회사 제품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단 평가가 나왔다. 해당 전략은 아직도 유효한데 삼성전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발트3국에서 제품명에서 'Z'를 제외한 '갤럭시 플립6(폴드6)'으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판매를 중단한 러시아는 사실 삼성전자에 포기하기만은 어려운 시장이었다. 삼성전자의 러시아 판매법인(SERC)은 전쟁 발발 직전(2021년 기준) 1000억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기록하는 유럽 내 거점 중 하나이고 실제로 스마트폰과 가전 시장에서 1위 자리가 공고한 시장이었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빈자리는 중국기업이 차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재등판한다면 시장 지위를 탈환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물론 국제 사회의 제재와 부정적인 여론으로 인해 선제적인 재진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면 아래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다행히(?) 2022년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던 삼성전자 러시아 판매법인(SERC)과 TV생산법인(SERK)은 각각 408억원, 64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공식적인 판매가 중단한 상태에서도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눈에 띄는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러시아 법인의 실적과 관련해 삼성전자 측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