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무산 늘어나자…투입비용이라도 챙겨달라는 자문사들
입력 2024.08.21 07:00
    딜 무산되면 인력·시간 등 투입 자원 '도루묵'
    당국 규제로 무산 늘면서 해외에선 논의 많아져
    IPO 중간 수수료 등 국내서도 고민 깊어졌지만
    국내 정서상 '성공보수' 구조 바꾸긴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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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M&A 시장에선 성사되는 딜(Deal)이 많지 않다. 당사자들도 아쉬운 일이지만, 시간과 비용을 쏟은 자문사들도 수수료 고민이 깊어졌다. 이전에는 성공보수 외에 일부 비용이라도 정산받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최근에는 인건비 등 비용이 부담스럽다 보니 마냥 손 놓고 있기가 힘들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딜이 무산됐을 때’도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지난 몇 년간 반독점 규제 당국의 벽을 넘지 못해 딜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슈가 떠올랐다. 각국의 경제 보호주의 확산으로 ‘정치적’ 이유로 인해 딜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 점도 고려됐다.

      한 대형 매각 자문사 관계자는 “워낙 딜이 성사가 안되다 보니 외국계 IB들은 수수료 구조를 바꾸려고 고민이 많은데, 딜이 안되더라도 착수금 없이 일정 부분의 비용만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방안도 거론된다”며 “인수자문은 일정 실사 비용이라도 있는데, 매각 자문은 특히 성공보수가 대부분이다 보니 딜이 무산되면 허탈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매각 자문이 (인수 자문에 비해) 성공 시 보수가 훨씬 큰 점을 고려하면 (딜 무산도) 감안해야 하는 점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거래에서 성사 여부를 떠나 수수료를 챙겨달라는 주관사의 시도가 포착되기도 했다. CJ올리브영 상장 주관을 맡은 모건스탠리는 상장이 지연되자 수수료 일부를 달라고 CJ 측에 요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CJ올리브영 소수지분 거래 자문 크레딧이라도 인정해 달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단기간 내 수수료 고민이 해결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이 많다. 수수료가 성공 보수 기준으로 책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정서상 ‘성공하지 않았는데 왜 수수료를 줘야 하나’의 인식이 여전히 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착수금 형태로 일부 수수료를 받고 나머지를 성공보수로 하는 협의가 이뤄지는 등 결국 보수는 협의가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이러한 틈을 타서 경쟁사가 염가 수임에 나선다면 협상이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IB업계에서는 비록 거래가 무산돼도 ‘다음 거래에 딜을 주겠다’ 정도의 약속이 불문율로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문사 간의 경쟁이 심화했고, 인력들도 이직이 잦아지면서 ‘해당 회사’에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보니 구두 약속의 매력이 줄어들었다. 

      시스템이 확실한 대형펌들은 계약서 등 절차가 확실하다 보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매각 자문에서도 법무법인 같은 경우, 딜 무산시 성공보수는 없더라도 업무에 투입된 시간 단위의 비용은 챙기게 된다. 

      한편 딜 자문에 있어서 부티크 펌이나 중소형 자문사들은 고객과의 관계에 크게 의존하는 자문 업무가 많고, 이런 경우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딜을 자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고객과의 관계가 최우선이다 보니 ‘다음’을 기약하는 차원이 큰 것. 딜이 성사됐을 때 ‘대박’을 노릴 수도 있지만, 딜이 성사되지 않고 인건비 등 비용 지출이 계속된다면 재정적인 부담도 져야 한다는 위험 요소가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어느 회사만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자문 서비스란 것은 없기 때문에 고객이 ‘너네 아니어도 할 곳 많다’ 식이면 자문사 입장에서는 협의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다”며 “최근에는 딜 클로징이 어렵다 보니 기본적으로 착수금을 깔고 가고 싶어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기업 등 고객들은 여전히 자문 서비스에 박한 분위기가 있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해외에서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주요 IB들은 거래 규모에 따라 일부 거래에서 계약 파기 수수료의 최대 25%까지 받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평균 약 15%의 계약 파기 수수료를 받아왔던 것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거래가 실패했을 때에도 지급되는 수수료가 올해 M&A 시장이 정체된 가운데 글로벌 IB들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 미국 제트블루(JetBlue)의 38억달러 규모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 인수 시도가 당국의 반독점 소송으로 실패했다. 당시 스피릿의 자문사인 바클레이스와 모건스탠리는 제트블루가 스피릿에 지급한 계약 파기 수수료의 약 25%를 받도록 협상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글로벌 IB는 자문 수수료의 약 20~25%를 '공정성 의견' 제공 대가로 부과하는데, 이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지급된다. '발표 수수료(announcement fees)'라고 불리는 이 수수료는 지난 10년 동안 총 자문 수수료의 평균 5~6%에 해당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증가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금융 규제당국 차원에서 딜이 성사되지 않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과거 대비 어느 정도 오른 것도 사실이다.

      이번 달부터 새롭게 기업공개(IPO) 주관업무를 맡는 증권사가 향후 기업이 상장 절차를 중단하더라도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IPO 중간수수료’가 시행된다. 작년 파두 사태 등으로 금융당국이 IPO 주관업무 개선방안을 발표함에 따른 것이다. 증권사들은 기업이 상장을 해야 주관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무리해 상장을 추진할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수료 구조를 바꾸겠단 취지다. 

      다만 아직 증권사들은 구체적인 수수료 책정 기준 등은 준비하지 못한 분위기다. ‘고객’ 일을 하는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당국 눈치를 보고 있지만 유관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표준 양식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