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숨통 트인 기업들…은행도 기업금융 영업 고삐
입력 2024.08.22 07:00
    상반기 위기설 많았지만 조용히 넘겨
    금리 인하 예상에 유동성 다시 꿈틀
    기업들 자금 조달 선택의 폭 넓어져
    은행 여신이 금리 낮고 활용도 높아
    은행도 하반기 기업 영업 분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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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작년 내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던 유동성 문제는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상반기 내내 ‘O월 위기설’ 같은 시나리오가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대기업 계열사들도 목전의 유동성 압박을 넘기 위해 자산을 급히 처분하거나 증권사 등에서 고금리 자금을 조달하곤 했다. 자금 조달 스케줄이 삐끗하면 주요 그룹이라도 연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상반기까지도 부동산 위기, 새마을금고 부실, 2차전지 산업 부진 등 키워드가 경기를 흔들 뇌관으로 거론됐다. 다행히 이런 위험들은 대부분 현실화하지 않고 지나가는 분위기다. 국내외 경기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시장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게 줄었다.

      기업들도 한층 여유가 생겼다. 자본시장에서 위기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줄어들며 투자자들의 시선이 다시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유동성도 조금씩 풀리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선택지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한창 시장 유동성이 위축됐을 때는 기업들이 어떤 자산을 내놓느냐에 관심이 모였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우니 결국 살림을 팔 수밖에 없고, 염가 매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였다. 다만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자산을 팔더라도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내놓자는 판단을 하는 분위기다. 기업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며 M&A 시장의 반등은 늦어지고 있다.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투자 수요가 다시 회복되자 한동안 발행하지 못한 채권들을 몰아서 찍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국내외 증권사의 일감 수주 경쟁도 전보다 뜨거워졌다.

      삼성물산이 2년 만에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등 휴식기를 깨고 다시 회사채 시장으로 돌아오는 기업이 나타난다. LG전자의 조단위 에어솔루션 투자유치 거래는 최근 사실상 백지화했다. 그룹 내부에서 지분을 파는 것보다 회사채를 찍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한화솔루션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사모채 시장 역시 분주하다.

      한 운용사 채권 투자 담당자는 “최근 시장 금리가 낮아지고 채권 투자 수요는 넘치는 상황이라 기업 입장에선 회사채를 발행하기 적기”라고 말했다.

      메자닌은 한동안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들로부터 각광받았다. 유동성 호황에 힘입어 메자닌을 발행하고 손쉽게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증시가 부진하고 투자자들의 조기 상환 요구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최근엔 다시 메자닌 발행을 검토하는 우량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고육책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니 발행 조건도 전보다는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도 우량 기업의 메자닌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크래프톤 지분, 차바이오텍은 차헬스케어 지분을 기반으로 각각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한 투자사 임원은 "메자닌은 어려운 기업들이 고육책으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투자자들도 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최근엔 다시 우량 대기업이 메자닌 발행을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투자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첫 손에 꼽을 자금 조달처는 역시 시중은행이다. 은행 여신은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금리가 낮고, 회사채나 메자닌 발행보다 절차적으로도 간편하다. 일단 한도를 열어두면 자금 수요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다.

      은행 역시 기업 여신을 취급하는 데 조심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기업들이 여유를 찾으면서 은행들의 자금 집행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일부 그룹은 목까지 찼던 계열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을 낮추며 은행 자금을 활용할 여유를 다시 찾았다.

      은행들은 작년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줄였고 최근엔 금리를 올려 가계 대출도 억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상환 안정성이 높은 기업금융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때문에 지분 투자는 쉽지 않지만 대출은 부담이 덜하다. 기업이나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하는 M&A 인수금융은 가장 선호도가 높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각 영업점들도 자금 수요를 파악해 본점에 올리느라 분주한 분위기다.

      은행들은 좋은 금리 조건을 앞세워 기업의 재무적투자자(FI) 자금 상환, 부동산 프로젝트 진행, 지배구조 개편 부수 작업 등에 참여하고 있다. 구조화를 통해 위험은 증권사에 넘기고 적당한 수준의 금리를 챙기는 거래도 여럿이다. 상반기 기업금융 집행 실적이 많지 않은 곳은 하반기에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우량 담보가 있는 거래에선 은행간 힘겨루기 양상도 벌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 금리가 하락하면서 조달 금리가 낮은 은행들이 영업하기에 더 유리한 환경이 되고 있다"며 "상반기 기업금융 실적을 많이 쌓지 못한 은행들이 하반기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