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합병비율' 두고 엇갈린 의결권 의사결정...'반대' 국민연금, 매수청구 저울질
입력 2024.08.23 07:00|수정 2024.08.23 07:18
    SK이노-SK E&S 합병에 찬반 갈린 국내외 연기금ㆍ자문사
    해외 자문사는 '명분'에, 국내는 '합병비율' 초점
    국민연금은 최종 반대...매수청구권 행사 여부 관심
    해외 주주 모두 찬성해도 '특별결의' 요건 충족 '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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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과 관련, 의결권 자문사 및 대형 연기금 등 주주들 사이에 상반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의결권 자문기관 사이에도 '찬반'이 갈리는 가운데, 주주간 '이합집산'에 따라 SK이노 합병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주주 구성상 합병이 결렬될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란 분석이다. 

      남은 변수 중 핵심은 반대표를 행사키로 한 국민연금 등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얼마나 이뤄질지다. 예상한 규모 이상으로 매수청구권이 들어올 경우 자금부담으로 합병이 좌초될 수 있다. '크레딧 라인'을 미리 뚫어두는 등 대비하고 있지만, SK그룹은 마지막까지 '좌불안석'인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22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반대키로 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심의 결과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은 합병비율 등을 문제삼는 국내 여론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인 모양새다. 이번 합병은 시장 밖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던 까닭에,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합병비율을 두고 주주권익을 내세우며 소액주주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해당 문제가 다뤄졌던 까닭이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결정을 내리며 국내 기관들도 반대 쪽에 기울 가능성이 좀 더 커졌다는 평가다. 일반적으로 이번 거래처럼 시장의 이목이 쏠리는 주주총회의 경우, 찬반 투표에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향이 큰 까닭이다. 일부 중소형 운용사의 경우, 국민연금과 상반된 의사결정을 하려면 해당 근거를 면밀히 제시해야 하는 등의 관례가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연금의 경우 찬성표를 던지기로 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판단은 눈에 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캘스터스)은 양사 합병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공시했다. 두 연기금은 합병가액, 밸류에이션, 이사회 독립성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양사의 합병 밸류에이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엇갈린 국내외 연기금의 입장처럼, 국내외 의결관 자문기관들의 목소리도 둘로 갈라진 상태다.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21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이 일반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합병 안건에 대해서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가 문제 삼는 부분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합병을 진행하는가'다. 서스틴베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일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6으로 역사적 저점에 있고 동종업계 PBR을 밑도는 수준에서 합병가액이 산정돼 회사의 주식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서스틴베스트는 "동일한 최대주주를 둔 상장회사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회사 SK E&S 간 합병 과정에서 이해상충 이슈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합병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산정됐다"며 "중장기적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해외 의결권 자문사의 견해는 달랐다. 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와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는 양사의 합병을 지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글래스루이스는 합병의 '명분'에 손을 들어줬다. 이번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 계열의 수익성을 향상하고 재무적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합병에 찬성을 의견을 냈다. 'SK온 구하기'란 비난이 있지만, 이를 통해서 그룹의 재무적 안정성이 높아진다면 합병의 근거가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서 합병 발표 이후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 및 전망을 상향한 부분도 합병 찬성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합병비율에 대해서도 SK이노베이션 주가가 그간 낮게 형성되어 왔다는 점에서 밸류에이션 산정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ISS는 의결권 판단 요소로 밸류에이션 합리성 여부를 살펴본다. 전략적 근거, 이해관계 갈등, 지배구조 등도 검토하는데 해당 부분에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찬성의견을 낸다. 

      ISS는 이번 합병건에 대해서 SK E&S의 기업가치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는 점과, 양사 합병으로 주당순이익 측면에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합병 찬성 근거로 들었다. 즉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셈이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해외 의결권 자문사는 '투표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적으로 가격 및 합병비율 산정에 큰 문제가 없다면 기계적으로 찬성 권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비상장사인 SK E&S의 가치평가 방식이 변수였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요 관계자들의 의사결정이 엇갈리며, SK그룹은 마지막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지분 구도는 '백중세'라는 분석이다. SK(주)가 SK이노베이션 지분 36.2%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개인이 24.9%, 외국인이 20.9%, 기관이 14.3%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합병 안건의 경우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찬성이 필요하다. ISS 등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해외 연기금이 찬성에 기운만큼, 외국인 지분 중 상당수는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SK(주)와 외국인 주주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다면 찬성률은 57% 정도다. 일반적으로 합병 등 중요한 안건을 다루는 주주총회의 참석률이 85~90%로, '출석 주주의 3분의 2'라는 커트라인을 넘기 위해선 56.7~60%의 지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3~5%의 찬성이 더 있어야 안정적으로 통과가 가능한 셈이다.

      주주총회에서 합병 안건이 무사히 통과된다 해도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산'이 하나 더 남아있다.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주식매수한도는 약 8000억원(지분율 7.4%) 정도로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약 6600억원)을 행사하면 매수한도까지 여유가 크지 않다. 

      국민연금은 매수청구권 행사 여부와 규모를 두고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내부서 SK이노베이션 주가 손실로 불만이 큰 상황에서 수익률 관리 차원에서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국민연금 입장에선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100조짜리 합병 회사 지분을 안갖고 갈 순 없다는 점에서 지분 전부를 주식매수 청구하진 않을 것이란 반박도 없지 않다.

      당장 SK그룹은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이 얼마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최대한 가능한 자금을 모집하려는 분위기다. 이미 은행들의 한도대출을 늘려놨고, 증권사들도 동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단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이 SK그룹에 손을 들어주면서 한 고비는 넘기게 됐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주주총회를 넘겨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변수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