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안건은 '반대'...저격수 자처한 국민연금
입력 2024.08.26 07:00
    취재노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공단은 SK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주요 주주이자 가장 오래된 투자자 중 하나다.

      표면적으론 SK의 든든한 우군처럼 보일수 있으나 실상은 SK그룹 오너와 경영진, 그리고 경영 활동을 견제하는 몇 안되는 기관투자가다. 이는 오래전부터 SK 계열사 주주총회 주요안건에 국민연금이 번번이 '반대' 표결을 행사한 것으로 증명된다.

      국민연금은 최근에도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안건에도 반대표 행사를 의결하며 SK그룹에 대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단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의 E&S 합병에 대해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을 반대표 행사의 이유로 들었다. 합병 비율 등을 두고 수탁위원들이 논의를 이어가며 의견이 팽팽히 맞섰는데 결론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도 이 같은 사례가 또 있었다. 지난 2015년 SK그룹은 지배구조의 옥상옥(屋上屋)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SK㈜와 SK C&C 합병을 추진했다. SK그룹은 두 회사의 합병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는데 당시 박정호 사장(現 SK하이닉스 부회장)이 SK C&C 사장 취임 이후 첫 성과란 평가가 나오던 거래였다. 

      분위기가 반전한 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하고 나서부터다. 합병의 명분과 시너지가 부족한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에 기관투자가가 반대하는 선례가 생기면서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의 고심이 깊어졌다. 결국 국민연금은 반대표 행사를 결정했지만, 주주총회에서 합병 안건은 양사의 찬성률이 각각 90%에 달하며 무난히 통과했다.

      이듬해부터 국민연금은 SK그룹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 대법원에서 횡령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던 최태원 회장이 2016년 SK㈜ 등기이사 복귀를 시도하자 지분 약 8%를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최 회장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배임과 횡령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만큼 등기이사로 복귀할 시 부적절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단 판단이었다.

      이후 2019년, 2022년 최 회장이 3년을 주기로 등기이사 재선임에 나설 때마다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결과적으론 선임을 저지하진 못했다.

      이번에 SK E&S와 합병을 추진하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2년 배터리 사업부문인 SK온을 물적분할했다. 당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분할에 찬성표 표결을 권고하던 상황이었고, 실제로 해외 연기금 상당수가 찬성표를 던졌음에도 지분 약 8%를 보유하던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당시 분할 안건의 찬성률은 80%를 넘었는데 기관투자자들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사실상 유일한 기관투자가로 기록됐다.

      SK 주요 계열사들의 이사 선임 및 이사진의 보수한도 승인의 안건에서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이미 잘 알려져있다. '독립성 훼손 우려', '회사의 규모와 성과에 비해 (보수가) 과다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사실 국민연금의 '반대' 표결이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주총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치고, 기업 경영 활동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로 보긴 어렵단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SK를 향해 경영진 면담, 주주서한 등 주주권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 '대세에 지장이 없는' 표결로 명분만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냉정한 지적도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SK그룹이 추진중인 SK이노베이션-SK E& 합병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최종적으로 주총에서 부결돼 무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다만 이번 합병의 경우 주주들이 신청하는 매수청구권 규모가 관건인데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 전량(약 6500억원)에 대해 매수를 청구하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주식매수한도(8000억원) 상당부분이 채워지기 때문에 성사여부를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SK그룹은 국민연금의 익스포저가 가장 큰 그룹사중 하나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K그룹 상장사 총 18곳(우선주 3개 제외)에 13조원 규모가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에 국민연금은 대부분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특히 SK그룹에 대해선 개별 주식투자는 물론 베트남 빈그룹, 11번가, SK에코플랜트 등 사모펀드(PEF)를 통한 간접 투자 비중도 상당히 높은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이미 SK그룹에 대한 추가 출자를 줄이고 자금 회수에 나서야 한다는 내부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SK그룹의 11번가 콜옵션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해당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이 앞으로 SK그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는 11번가의 매각 작업이 잠정 중단됐고, SK그룹 차원에서도 처리 문제에 대해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투자금 약 4000억원의 회수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SK그룹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에 나서게 된다면 단순히 주총 반대표 행사 수준에 그치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