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대하듯 압박하는 이복현…'강행이냐 철회냐' 기로에 선 두산
입력 2024.08.28 07:00
    이복현 금감원장 '무제한 정정' 시사하자
    금감원 두산로보틱스 증권신고서 2차 정정요구
    이복현式 관치에 원안 강행은 사실상 어려워져
    합병비율 조정 혹은 주주환원책 제시해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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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또 한번 두산그룹 지배구조개편에 제동을 걸면서, 두산의 계산기가 다시 복잡해졌다. 

      금감원의 압박은 사실상 '지배구조 개편을 철회하라'란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원안 강행은 사실상 어려워진만큼 분할·합병 비율을 변경하거나,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투자자들에 확실한 주주환원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6일 금감원은 기존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의 효력발생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서 2차 정정을 요구했다. 두산로보틱스가 앞으로 3개월 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분할합병 자체가 무산된다. 물론 두산그룹이 수정안을 제시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초 계획했던 일정은 다소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합병 증권신고서의 효력은 7거래일 이후에 발생한다. 기존 계획했던 9월25일 주주총회 개최를 진행하기 위해선 2주 전까지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해 주총 소집 통보가 이뤄져야한다. 이를 위해선 이달 29일까지 정정 신고서를 제출해야한다. 금감원의 정정 요구 범위가 광범위한만큼, 시일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 될 전망이다.

      ◇ 두산 구조개편 강행 위해선 비율정정 불가피 할 듯

      두산그룹은 금감원 요구에 따라 이미 한 차례 증권신고서를 정정한 이후 반기보고서 내용을 추가해 자진 정정했다. 이어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주주서한을 공개하는 등 본안 강행을 위해 나름의 자구안을 마련했다. 수 십 페이지에 달하는 투자위험 요소를 증권신고서에 추가했고, 서신을 통해 분할·합병 목적과 시너지를 설명했지만 사실 핵심인 합병비율은 수정하지 않았고, 주주환원책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합병비율에 관한 내용이 금감원 지적의 핵심이다.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적자회사인 로보틱스와 합병을 추진함에 있어 '시가'를 기준으로 한 방법론은 문제삼기 어렵지만,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게 요체다.

      두산그룹이 이 같은 핵심 요인들을 비껴나가다보니 이복현 원장 역시 무제한 정정 요구를 시사했다. 그리고 실제로 효력발생을 하루 앞두고 정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두산그룹 자체적으로 추가적인 투자위험 요소, 투자자보호 장치 등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란 분석이다. 결국엔 ▲합병 비율을 조정하거나 ▲본안을 유지하되 주주환원책을 강화하거나 ▲아예 철회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단 평가가 나온다.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건 어렵다. 다만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5(합병의 요건·방법 등))에 따라 계열회사간 합병에 한해서 10%의 할증 또는 할인이 가능하다. 그룹이 지배구조개편을 강행한다면 이를 활용해 합병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합병 비율의 10%의 할증 또는 할인을 적용한다하더라도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건 별개의 문제다. 1차 관문을 넘는 것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얼마나 동의할 것인가'에 달렸다.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기존에 설정한 6000억원을 넘지 않는게 2번째 관문이다.

      두산그룹 측은 현재로선 "금감원의 정정신고 요구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향후 계획에 대해선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 2차례의 유상증자, 블록딜까지…이번에도 희생 강요당한 주주들

      최근 4년 내 두산에너빌리티는 2번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2020년 1조3000억원, 2022년 1조1500억원 등 두 차례 조(兆) 단위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자본금을 확충했지만 사실 주가는 10년 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원전 사업의 부침 등 대외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다만 그룹차원에서 원전 외에 핵심 계열사의 사업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주들의 자금투입이 지속돼 왔는데, 이번에도 역시 주주들에게 두산밥캣이란 캐시카우 자회사를 떼어 내는데 동의할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두산그룹은 신규 해외 원전 수주란 호재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전략을 마련했지만, 이같은 사업 전망 역시 주주들에게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하진 않는 모양새다.

      분할·합병 비율 정정과는 별개로 지배구조개편에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당근책이 필수적으로 제시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 또는 소각, 배당 확대 등이 현실적이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하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개편을 강행한다면 자사주 활용대책, 배당 등 주가부양을 위한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며 "주주환원책 역시 자회사를 떼어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고, 강력한 주주환원책을 제시한다면 이 또한 회사의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손익계산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관건은 역시 국민연금...SK이노 공식 그대로 대입도 가능

      두산그룹이 본안을 강행한다면 사실상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앞선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추진 사례에서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합병에 반대했다.

      그나마 SK그룹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주식매수청구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데 두산그룹은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만으로도 매수청구 한도를 크게 웃돌기 때문에 사실상 강행하긴 쉽지 않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은 아직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개최 여부도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금융당국이 수장이 앞장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 더해 국회 개원 이후 국정감사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정무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시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논란이 일었던 대기업의 분할합병 거래에서 '찬성표'를 던진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판단을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중 하나다.

      ◇ 은행 대하듯 두산 다루는 이복현 式 관치금융?

      사실 금융당국 수장이 직접 기업의 경영 활동에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던지고, 심지어 방송에 출연해 작심 비판한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정부가 기업의 '밸류업'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금감원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꺼낸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이복현 원장은 장외 여론전을 통해 '합법이지만 주주들이 동의할 수 없는' 합병 비율 논란을 끊임없이 수면위로 끌어냈다. 증권신고서 무제한 정정이란 초강수를 두며 물러서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두산그룹의 전향적인 전략 수정 없이는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사정기관 수장인 금감원장의 숨소리 하나까지 귀를 귀울이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복현 원장이 지난 주말 방송에 출연해 은행의 가산금리 상향 조정을 비판하자, 은행들은 바로 다음 날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 대신 한도 축소ㆍ거치기간 폐지 등의 다른 대안을 대놨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현 시점까진 금감원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결국 두산그룹의 사태는 금감원이 기업을 대하는 입장과 한계를 동시에 나타냈단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두산그룹의 전략 변화, 그리고 금감원이 어느정도 수준까지 물러설 것인가이다. 아울러 두산그룹이 금융당국까지 등을 돌리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반드시 지배구조개편을 강행해야하는가'에 대한 원인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어떠한 결론을 내든 유무형적 손실은 불가피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최고 경영진을 비롯해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