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사들은 왜 KKR에 뿔이 났을까
입력 2024.08.28 07:00
    KKR 인수한 악셀, 인수 2년만에 부실화
    국내 대주단에 대출 삭감 요구하며 논란
    소통 없었고 대주단 제안에도 묵묵부답
    주요 LP 떠오른 한국 홀대한다 여길만
    당분간 KKR 딜 검토 조심스러워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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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이 이끄는 컨소시엄은 2022년 유럽 최대 자전거 제조사 악셀그룹(Accell Group)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역사적인 유동성 호황기에 ESG 테마를 안고 진행된 이 거래의 규모는 2조원을 훌쩍 넘었다. 컨소시엄은 1조원 이상의 인수금융을 일으켰는데 그 중 2000억원은 국내에서 소화됐다.

      이후 1년 사이 악셀그룹 매출은 10% 줄었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90% 급감했다. 유럽 경기가 둔화하고 ESG 열기도 사그라든 영향이 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악셀그룹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안에 악셀그룹 인수금융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악셀그룹 경영난이 심화하자 KKR 측은 인수금융 대주단 측에 기존 대출액의 80%를 탕감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차주 쪽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던 국내 금융사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출자전환도 아니고 탕감을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대주단에서 100% 동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주단 측은 금융 기법을 활용해 기존 대출을 사실상 5년간 무이자로 유예하는 방안도 제시해 봤지만 악셀그룹 주주 쪽에선 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며 인수금융을 주선했던 신한투자증권이나 투자 수단(vehicle)을 제공한 자산운용사도 난처함을 표하는 분위기다.

      한 대주단 관계자는 "지금까지 상황이 악화하는 과정에서도 별 다른 소통이 없었다"며 "대주단 측이 제안한 대출 조건 조정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답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유럽 현지 법원에서 악셀그룹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주단 일각에선 KKR 측이 어느 나라 법원을 택할지, 그에 따른 대응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할지도 고민하는 분위기다. 악셀그룹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떤 경우에도 국내 금융사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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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선 시중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상호금융사 등이 악셀그룹 인수금융 대주단에 포함돼 있다. 이 중 일부 시중은행은 해외 지점에 악셀그룹 관련 대출 자산이 계상돼 있다. 한 금융사 전체로 보면 크게 우려되는 금액이 아니지만 해외 점포 수준에선 부담이 작지 않다. 경과에 따라 현지 금융감독 당국의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 대출 채권자는 후순위 지분 출자자보다 권리 순위가 앞서는데 악셀그룹 사안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KKR 등은 대여금 형태로 악셀그룹에 자금을 지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요 지적재산권(IP)이나 실물 자산 상당 부분을 담보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악셀그룹 주주 쪽에 알짜 자산 우선권이 있다면 향후 국내 금융사의 권리 행사 폭은 좁아질 수 있다.

      최근 국내 대주단은 KKR 측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글로벌 PEF들은 볼커룰(Volcker rule)의 영향으로 미국서 출자받기 어려워졌고, 이후 한국 등이 중요 출자자(LP)로 떠올랐다. KKR에 수천억원에서 조단위 출자를 약정하고 있는 곳이 여럿이다. 특히 신한금융은 2018년 KKR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이후 펀드 결성 과정에서도 협업했었다. 국내 금융사 입장에선 KKR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다 느낄 만하다.

      다른 대주단 관계자는 "KKR은 국내 기관투자자가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곳이었다"며 "악셀그룹 사태에서 KKR의 대응은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KKR과 관계를 고려해 항의 서한에 참여하지 않은 금융사들도 있고, KKR아시아와 KKR유럽의 일은 별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분간 국내 금융사가 KKR 관련 투자에 나서기엔 조심스러울 것이란 예상도 없지 않다.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KKR 측 인사들도 악셀그룹 사안과는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또 다른 대주단 관계자는 "KKR이 말하는 대출 채권 감액 규모는 사실상 부실채권(NPL)이 된 후에나 꺼낼 수 있는 수준"이라며 "악셀그룹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KKR이 앞으로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