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왜 에너빌리티에서 밥캣을 떼어내야만 할까?
입력 2024.09.03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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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그룹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식교환 계획을 철회했지만, 지배구조 개편의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밥캣을 떼어내 이를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만드는 최초 계획에는 변함이 없는 까닭이다.

      이 계획이 성공할 것으로 예단하기 이르지만, 두산이 왜 이런 구조를 짰고,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들여다볼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비쳐진 두산그룹의 행보를 보면, 에너빌리티에서 밥캣을 떼어내야하는 확실한 목적이 있단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금융당국 수장과 정치권의 거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또 수 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도 반드시 밥캣을 분할해야하는 '대전제'가 깔려있지 않고서야, 이번 구조 개편을 관철해야 할 이유를 찾긴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분할합병으로 인한 명확하고 효과가 뚜렷하다면 이견을 갖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두산그룹이 밥캣을 분할하는 표면적인 배경은 투자재원을 확보하겠단 것이다. 회사는 "밥캣의 지분자체가 실질적인 담보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에 차입의 한도를 늘리는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기면 에너빌리티가 밥캣 인수를 위해 투입한 7000억원의 차입금이 감소해 재무지표(차입금의존도, 이자보상배율)이 개선되고 이를 통해 에너빌리티가 추후 차입할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난다는게 요지다.

      회사 측은 올해 연말 2조8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순차입금을 1조6000억원까지, 즉 1조2000억원가량 줄인다면 4800억~7800억원 수준의 차입 여력이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차입금 감소 목표(1조2000억원)에는 큐백스, D20캐피탈, 분당리츠 등을 로보틱스를 상대로 5000억원에 매각한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밥캣분할만으로 예상되는 실질적인 효과는 7000억원의 차입금 감축이 전부다.

      두산밥캣이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연간 꾸준히 배당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7000억원에 대한 금융 비용은 배당을 통해 충분히 상쇄가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두산그룹은 2007년 밥캣을 인수했고 2016년 상장했다. 회사의 설명과 같이 밥캣의 담보가치가 제한적이란 것은 밥캣의 지분가치가 그만큼 낮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밥캣의 기업가치가  수년 간 정체돼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두산그룹에서 자리잡은 핵심 계열사의 정체 원인과 해법을, 단순히 모회사의 교체에서 답을 내리려는 결론을 도출하자 투자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에너빌리티 입장에서 또는 그룹차원에서 밥캣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뚜렷한 전략이 제시돼 왔냐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글로벌 유수의 중장비 기업들이 가파른 성장 전망치를 내놓으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때 두산그룹은 같은 기간 오히려 실적 전망치를 낮추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 결과물은 연간 1조원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시가총액 4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증명됐다. 에너빌리티와 로보틱스에 비해 턱없이 낮은 밥캣의 기업가치는, 두산그룹이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방식의 정당성을 내세워 지배구조개편 방안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에너빌리티의 차입 여력 확대에 대해서도 신용평가업계에선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밥캣 지분가치를 활용한 재무융통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순자산 감소로 부채비율이 상승할 수 있단 점이 주된 이유다. 또 차입금 감축과 자산 매각이 이뤄지지만 역시 분할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하긴 미흡하단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지배주주, ㈜두산 또는 ㈜두산을 지배하고 있는 오너일가의 입장에선 달라지는 게 없다. 밥캣이 에너빌리티 아래 있든 로보틱스 자회사로 위치하든 실질적 지배력은 동일하다.

      에너빌리티 투자자 입장은 다르다. 에너빌리티 투자자는 로보틱스 주주가 아닐뿐더러 ㈜두산의 투자자도 아니다.

      연간 1조를 벌어들이는 글로벌 중장비 회사의 경영권 지분을 계열사가 아닌 외부에 매각한다고 가정해보자. 경영권 프리미엄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지분율만큼 가격을 쳐서 팔겠다면 이에 동의할 투자자가 몇이나 될까? 이 경우 배임 논란이 불거질 여지도 충분하다.

      지금 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입장이 딱 그러하다. 밥캣의 지분을 로보틱스에 시가에 넘기면 그 대가로 100주당 3주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심지어 에너빌리티의 주식마저 분할비율에 따라 25%가량 줄어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회사 측은 주식수는 25% 줄어들지만 시가총액이 10%밖에 감소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에너빌리티가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외면 받으면 이런 계산식 자체가 무의미해 진다.

      '두산그룹은 왜 반드시 밥캣을 분할하려고 하느냐'로 의문점이 귀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밥캣 분할이란 '대전제'가 누가 기획했고,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며, 어떤 필요성에 의해 진행되느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현재 상황만 봤을 때 두산그룹이 기획한 지배구조 개편은 주주와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 거래는 아니란 점은 비교적 명확해보인다.

      2016년 그룹 총수자리에 오른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의 최장수 회장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그룹 절체절명의 위기에 등장했고 두산그룹 100년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수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젠 후계 구도를 구체화할 때가 다가왔다. 두산그룹은 형제 경영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가족회의에서 차기 회장을 점찍어 발표하기 전까진 하마평조차 조심스럽다.

      두산그룹이 아니더라도 대기업의 지배구조개편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와 떼어내 설명하긴 어렵다. 2세~3세대 경영인으로 대물림하는 과정의 변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승계와 구조개편은 오너기업의 경영자들에게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는 숙제와도 같은데 이를 매끄럽고 잡음 없이 해결하는게 핵심 경영진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두산그룹은 이번 지배구조개편안으로 인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무형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금융당국은 '지배주주 이익만 생각하는 기업'으로 낙인 찍었고, 정치권에선 '밥캣 방지법'을 발의하는 등 공세를 시작했다. 

      가장 큰 손실은 투자자들에게 두산은 예측하기 어려운 기업이란 인식이 퍼졌단 점이라는 게 금융가의 중론이다. 그 여파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기업가치와 이미지에 녹아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