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또다른 고민…뒷전으로 밀려난 신유열 승계 전략
입력 2024.09.04 07:00
    신유열 전무 2020년 이후 부상
    다른 그룹들보다 준비 늦었는데
    M&A나 신사업 여력 많지 않아
    바이오 힘싣지만 성과는 미지수
    궁극적으론 '지분 확보'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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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다. 신 전무는 2020년 일본 롯데 영업본부장을 시작으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고 이후 롯데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를 거쳤다. 입사 전 노무라증권에서 사회 경험을 쌓고 롯데케미칼에서 기반을 닦았던 신동빈 회장의 행보와 겹쳐 있다.

      신유열 전무는 최근 롯데지주,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한국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이후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거나 해외 귀빈 미팅, 해외 사업 행사에도 신 회장을 보좌해 참석하는 등 그룹 내 후계자로서 입지를 대외에 알리는 행보를 하고 있다. 올해는 병역 부담도 덜었다.

      롯데그룹 차기가 누구냐는 데는 의견이 갈리지 않는다. 다만 그 후계자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어떤 성과를 냈느냐 하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경영수업 전면에 나선지 오래 되지 않은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룹이 '비상경영'에 나선 상황에선 긍정적인 신호를 내기 어렵다.

      롯데그룹은 화학, 유통 등 주력 산업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주를 비롯한 그룹 전 계열사의 재무구조도 흔들리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시장에선 롯데케미칼의 대규모 자본확충이나 그룹 차원의 대형 자산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신 전무가 아버지처럼 롯데케미칼 재직 경험을 성과로 내세우긴 어렵다.

      신유열 전무는 기존 주력 외 다른 성과가 필요한데 그룹이 그린 그림은 미래 먹거리 확보다. 지난해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에 미래성장 태스크포스를 꾸려 준비 작업에 나섰다. 작년 말엔 신유열 전무가 승진해 롯데케미칼에서 롯데지주(미래성장실장)로 옮겼다. 그룹 내 M&A 전문가들이 신 전무의 보좌 역할로 합류했다.

      롯데그룹은 한때 주요 그룹 중 가장 M&A 전문성이 높았고, 최근 수년간에도 심심찮게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최근 M&A 성과는 두드러지는 것이 없다. 3조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부진이 뼈아프고 솔루스첨단소재, 한샘 등 소수지분 투자 성과도 아직 신통찮다.

      결국 새로운 산업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핵심은 바이오와 헬스케어다. 신유열 전무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임하며 현안을 적극 챙기고 있다. 롯데는 2022년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 사업에 뛰어 들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BMS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인수했고, 한국에선 지난 7월 송도 바이오캠퍼스 착공식을 가졌다.

      다만 바이오 사업이 단기간에 신 전무의 '트로피'가 될 지는 미지수다. 의약품 위탁생산은 이미 대형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발 주자가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초기에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야 하는데 지금 그룹이 나서 지원하긴 부담스럽다. '빚 줄이기'가 지상 과제인 롯데그룹 입장에선 금융권 차입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롯데그룹의 승계 작업이 빨랐다 보기도 어렵다. 한동안 형제의 난을 겪었고 중국의 사드 보복, 국정 농단, 신동빈 회장 유고, 코로나 팬데믹 등 악재들이 이어지며 승계 논의를 꺼낼 상황이 아니엇다. 신동빈 회장이 60대에 접어든 후에야 겨우 후계자가 전면에 드러난 양상이다.

      롯데는 장자승계 원칙이 있거나 20대부터 준비하거나 미리 승계팀을 꾸린 다른 그룹에 비하면 승계를 준비할 시간이 적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앞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도 없다. 신유열 전무의 보좌 조직은 여전히 여러 사안을 살피는 중인데 이런 상황이 부담될 것으로 보인다. 장자를 앞세운 사업이 부진하면 경영 능력 없이 '3세라 물려 받았다'는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유열 전무가 후계자로서 열심히 산업을 살피고 있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며 "M&A를 하자니 그룹에 돈이 없고 바이오 등 신사업을 하자니 이 역시 난이도가 낮지 않다"고 말했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결국 신유열 전무가 유의미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 전무는 지난 6월에야 처음으로 롯데지주 지분 7541주를 사들였는데 그 규모는 약 2억원 수준에 그친다. 신동빈 회장이 가진 롯데지주 지분 13% 시가만 3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과 일본에 별다른 '개인 주머니'가 있지 않는한 승계 전략을 짜는 것이 쉽지 않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측 지배력과 지지를 확보하려면 갈 길이 더 멀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