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적극 행사? 왜?"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탁상공론'
입력 2024.09.06 11:34|수정 2024.09.06 11:35
    Invest Column
    운용사 간담회서 '적극적 의결권 행사' 요구
    '의결권 행사는 죽음의 길' 운용사들은 '회피'
    메시지도 한 달 전 이복현 원장 발표 '재탕'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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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자산운용업계에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요구했다. 업계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현실을 모르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 완성을 위해 기관들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적극적 의결권 행사가 '순교의 길'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발 벗고 나설 운용사는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5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운용업계가 자산관리자이자 주요 투자자로서 적극적 의결권을 행사해 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그동안 자산운용업계는 상장지수펀드(ETF) 베끼기, 수수료 인하, 형식적 의결권 행사 등 단기 수익 추구에 치중하느라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쓴소리와 함께였다.

      간담회 이후 운용업계에서는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적극적 의결권 행사'는 이미 운용업계에서 '죽음의 길'로 불린지 오래다. 한때 가치투자의 명가 중 하나로 손꼽히던 KB자산운용이 첫 손에 꼽히는 사례다. KB운용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전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하우스였다.

      2018년 1월 컴투스를 시작으로 2019년 7월 SM엔터까지, KB운용은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경영진의 책임을 묻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제안을 했다. 당시 이 같은 움직임은 신선한 시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주주행동의 결과는 관계자들의 퇴사였다. 당시 주주권 행사의 핵심을 담당하던 밸류운용본부의 최웅필 본부장과 정용현 팀장은 2020년 회사를 떠났다. KB운용은 주주권 행사 관련 게시판을 없애고, 주주서한 자료를 삭제했다. 당시 그룹 최고위층에서 '돈도 못 버는 운용사가 소음만 일으킨다'며 격분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사례도 회자된다. 2020년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문(현 LG에너지솔루션)의 분사를 발표했을때, NH아문디운용은 주주서한 발송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NH농협그룹 내부에선 이 같은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은행은 LG그룹과 금전거래를 해야했고, 증권은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주관사 수임에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룹 경영진이 항의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NH아문디운용은 주주서한을 발송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결국 NH투자증권은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조차 수령하지 못했다. NH투자증권의 뿌리가 LG투자증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수탁자 책임에 관한 규정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식 도입되고 난 뒤에도 운용사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건, 수익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국민연금 수준의 '고래'가 아니라면 기관 한두 곳이 목소리를 내봤자 발행사와 관계만 악화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행정고시 37회로 옛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금융정책국에서 근무했고, 기획재정부에선 경제분석과장ㆍ종합정책과장ㆍ경제정책국장 등 정책 관련 부서에서 오래 일했다. 내정 당시부터 현장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 간담회에서 이런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난 게 아니겠느냐는 평가다.

      '뒤늦은 훈수'를 두고서도 뒷말이 적지 않다. 적극적 의결권 행사는 이미 지난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운용사 대표 간담회에서 한 차례 강조한 내용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비롯해 운용사의 의결권 및 수탁자 책임 관련 이슈는 이전까지 금융위원회에서 주도해왔다. 김 위원장의 이번 메시지는 이 원장에 비해 늦었고, 내용도 차별화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실세 감독원장'에 가려 존재감이 옅었던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의 전철을 또 다시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