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통 검사나, 운동권이나"...관치에도 수준이 있다
입력 2024.09.11 07:00
    Invest Column
    '경제 못배운 386'과 '특수통 검사 출신'당국자들 정책방식 유사
    시장 이해도 떨어지면서 본인들만의 정의 강요하는 모습 반복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경제발전의 주역을 맡아야 할 <386세대들>이 80년대 초 대학시절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며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회자된, 이른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제 못배운 386" 발언이다. 당시 청와대를 점령했던 386 운동권 출신 참모진들은 이 발언에 발끈, 길길이 날뛰면서 부총리를 앞다튀 공격하고 말끝마다 험담하기 바빴다. 이들의 분노는 결국 재산신고를 빌미로 한 현직 경제부총리의 중도 사임으로 이어졌다.  

      딱 20년이 지난 지금. 저 문장에서 <386세대들>을 <특수통 검사들>로, <정치적 암흑기>를 <정치인ㆍ기업 오너 수사>로 바꾸면? 체감도가 비슷하다.  

      이들의 '결'이 꽤 유사하다는 점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투기 바람으로 집값이 급등하자 운동권 출신 참모진들이 선택한 방식은 "때려 잡겠다". 당시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주도 아래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고,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를 강화했다. 주택거래 신고제를 도입하고,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권 전매 금지를 마련했다.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를 예고하고, 보유세 인상을 강화하고, 1가구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까지 준비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하늘이 무너져도 투기를 잡겠다"고 선언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아파트를 더 공급한다든가, 부지를 늘린다든가 등의 방식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본인들만이 '정의'였고, '인간적인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그들의 신념 만이 오로지 '절대 선'이었다. 시장은 당연히 '알아서' 따라 움직여줘야 했다. 

      특수통 검사출신이자, 윤석열 정부 '적통자'인 이복현 금감원장이 가계대출 급증을 다룬 방식도 꽤 비슷하다. 결국 "때려잡자"다. 은행들에게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협박했고 ("은행들이 대출을 무리하게 해서 가계부채가 악화됐다")고, 알아서 기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금리인상은 정부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시장에는 "이런저런 변명하지 말고 그냥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줬다. ("집값 상승을 바란 가계대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근간과 원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오만함. 감독당국 수장이 아닌, 범죄자를 다루는 거친 검사의 모습이다. 

      '내로남불' 양태도 비슷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30억원이 훌쩍 넘는 반포 잠원동 아파트에 거주 중이고,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은 재건축 대상이었던 신반포한신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해 평당 2억원을 찍은 원베일리 40억원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대한민국 누구나 부러워하는 '강남 입성' 신화를 써냈다. (참고기사 : 금융위원장도 '강남불패'?...김주현 위원장 20억 신고한 래미안 원베일리 45억으로 '껑충')

      이런 감독당국 수장들이 "무주택자만이 대출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은행들을 몰아붙였고, 거주지를 옮기려는 1주택자는 죄인으로 만들고, 아무 상관 없는 전세입자들의 대출까지 가로막는 모양새가 연출 됐다.

      부임 2개월된 신임 금융위원장의 행보도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상호금융권을 만나 "부동산 PF사업장 부실은 모두 6개월 내에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속도를 내라"는 의도는 이해하겠으나…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수백조원 단위 사업장들을 몇개월내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결국 꼼수를 쓰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아니면 손해를 볼 각오로 선ㆍ중순위 대출이 엮인 사업장들을 대거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PF대출 리스크를 후순위까지 확대, 전방위적인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본인들도 모르지 않을 터다. 

      새마을금고를 위시한 "상호금융권 규제체계를 강화하겠다 고 선언했는데. "어떻게?"는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부처간 협업으로 일이 풀렸다면 지난 새마을금고 부실 사태는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어느 정부도, 대통령도 성공시키지 못한 새마을금고 감독체계의 금감원 이전을 과연 그가 시도할까. 회의적이다. 결국 "신임 금융위원장이 말씀하셨으니 까라면 까"라는 메시지가 전부다. 

      금융관료들에는 항상 '관치' (官治)라는 비판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시장을 무시하고 겁박하면서 엘리트 관료들이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지배구조를 무시할 때 관치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관치도 관치 나름이다. '라이선스'를 받고 움직이는 금융업은 태생적으로 '규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다.

      자유시장 경제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에서 금융감독당국의 위세와 권위는 우리와는 비할 바가 못된다. 이들의 관치는 협박 방식도 무섭고, 고급지다. 일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예고될 무렵.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Henry Hank Polson)은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을 포함, JP모건ㆍ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ㆍ씨티 등의 수장들을 모조리 뉴욕 연방준비은행으로 주말에 불러모으고는 며칠간 아예 가둬버린다. "리먼의 부실자산을 정부가 해결할 수 없으니 돈 많은 당신들이 십시일반해서 자금을 모아 부실자산을 인수해라" 그리고는 "리먼 사태와 우리와는 상관없다"라고 불평하는 이들을 향해 나즈막히 뇌까린다. "리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당신들도 죽어난다. 이번 방침에 협력하지 않은 곳은 (미 재무부가) 반드시 기억할 거다"

      우리 금융관료들에게도 이런 '수준'(Class)이 있었다. 비록 '마피아'와 동급 취급을 받고는 있어도, 전문성이나 시장 이해도, 그리고 정교함만큼은 민간에서도 모피아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대 초 카드회사들이 신용불량자에게도, 고등학생에게도 신용카드를 발급하면서 떼돈을 벌어들이고 결국 카드사태 위기를 촉발시켰다. 이때 참여정부가 해결사로 부른 이는 정권창출 과정에서 되레 반대편에 서 있었던 친시장주의자 이헌재 부총리였다. 그는 취임식 일성으로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하는 철없는 어린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카드회사들을 긴장시켰고, 결국 사태를 해결했다. 

      이들의 협박은 시장 이해도나 구체적인 디테일이 다 빠진 "까라면 까"와는 달랐다. 문제점을 정확히 이해했고, 탓해야 할 곳과 이유를 명확히 제시했으며, 적절한 처방책을 제시하고 시장이 이를 순순히 수긍하게 했다. 민간 경험도 많다. 행크 폴슨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기 전 골드만삭스 회장으로 재임, 엄청난 보너스를 받을 정도로 회사를 키운 인물이었고, 이헌재 부총리도 오랜 야인생활을 떠돌며 내공을 쌓은 인물이다. 

      이 정도의 실력을 선보인다면 "관(官)은 치(治)하라고 있는 겁니다" 광오한 발언도 선뜻 수긍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본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장을 어떻게 망가뜨릴지 예측조차 못하는 이들이 감독당국 수장으로 앉아 오락가락하는 메시지만 던져댄다. 그리고는 본인들이 대단한 시장 전문가인 것처럼 행동한다. 

      본인들의 말 몇마디면 시장이 알아서 움직이고 따라주어야 한다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오만함이 넘쳐 난다.  

      공교롭게도(?) 올해 22대 총선 때 여당의 어젠다는 '386 운동권 문화 청산'이었다. 이는 여당 인사들이 이끄는 지금 정부가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참여한 참여정부 혹은 문재인 정부의 방침과는 대척점에 있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서로 기묘할 정도로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 "양쪽 극단에 있는 이들은 하는 행동이 비슷하다" (Extremes meet ; Pascal Pensées)고 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