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금감원장과 '검사' 국민연금 수책위원장이 주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입력 2024.09.12 07:00
    취재노트
    하필이면 금감원장도 수책위원장도 檢 출신들
    개편 과정서부터 잡음多…이제 맞손 잡는 중?
    전문성 강화한다더니 정치적 해석 여지만 늘어
    "안 좋은 선례만 남기게 된 것 아니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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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국민연금공단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기업 공시에 대한 감독·심사 권한을 쥔 금감원과 의결권을 쥔 국민연금이 의기투합하는 모양새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하필 검사 출신 인사들이 운전대를 맞잡고 있다. 진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양측이 안 좋은 선례만 쌓고 있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일단 접점이 없어 보이는 금감원과 국민연금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함께 주도하는 장면부터가 낯설다. 최근 양측은 두산·SK그룹 등 논란이 불거진 기업의 증권신고서를 문제 삼고, 합병·주식교환 등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주주들이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이기도 하고, 여기까지는 각 기관이 제 할 일을 하다 우연이 손뼉을 마주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데 투자업계에선 이복현 금감원장과 한석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똑같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이 껄끄럽다. 지금까지 기업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시민단체·노조 등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커져서 좋았던 전례가 없다. 특정 직업군, 그것도 검찰 출신 인사들이 칼자루를 나눠 찬 구도도 못지않게 부작용만 남길 것이란 우려가 새 나온다. 

      당초 한 위원장이 지난해 기금운용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선임될 당시부터 안팎에서 말이 많았다. 기금위에까지 검사 출신을 앉히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식이었다. 기금위는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 기관으로 기업으로 따지면 이사회에 해당한다. 실제로 한 위원장 선임 직후 기금위는 수책위 운영 규정을 개정해 산하 위원 구성부터 바꿨다. 

      9명으로 구성되는 수책위에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단체 몫 추천권을 줄여 전문가 단체가 위촉한 전문위원을 늘린 방향성 자체는 바람직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밝힌 취지대로 수책위에 필요한 건 사회 갈등 구조를 빼다 박은 노사정 대변인이 아닌, 운용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후 한 위원장이 기금위에서 수책위 위원장으로 옮겨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연금 책임투자 강화에 참여했던 국책기관 한 인사는 "기금위, 수책위가 노조, 경영자단체 추천 위원으로 꾸려지는 것도 문제가 많았다. 근데 전문성을 강화한다면서 검찰 출신을 위원장으로 앉히면 무슨 얘기가 나오겠나"라며 "정부 스스로 수책위원장 자리를 기업 압박에 동원할 수 있는 완장쯤으로 격하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달리 보자면 수책위의 의결권 행사를 두고 이런저런 제 2, 제 3의 해석의 여지만 늘린 셈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장에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두고 특정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가늠하는 뜬소문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해외 공적 연기금 행보를 두고 그런 추정을 하면 음모론자로 치부되겠으나, 국민연금에 대해선 왠지 빈말 같지가 않다. 

      전문성을 강화한다면서 검찰 출신을 앉힌 데 따른 부작용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국민연금이 금감원과 보폭을 맞춰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주도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진정성 있게 비칠까 싶다. 

      수책위 출신 한 인사는 "수책위나 국민연금 행보에 정치적 색채가 덧씌워지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도 국민연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게 최대 부작용"이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들이 말을 안 들으면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길이 열려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결국 전문성, 독립성을 갖춘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에 충성하지 못할 때 불거진다. 국내에 그렇지 못한 기업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이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제도적 수단을 쥔 기관·수장들이 똑같이 전문성, 독립성부터 진의까지 의심받는 상황에선 공염불이 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