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도 배터리도 아니다"…금리 떨어지자 '바이오'만 바라보는 투자자들
입력 2024.09.26 07:00
    美 금리 인하에 다시 주목받는 바이오
    반도체 기대감 반감, 주목도 떨어진 배터리
    터널 진입한 화학, 제조업 한계 보여준 완성차
    삼성바이오 황제주 등극, 알테오젠 코스닥 대장
    "세부 업종에 따라 선별투자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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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불과 1년 전만하더라도 '바이오'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잊혀진 투자처로 인식됐었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하며 성장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고,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서 크게 진일보하지 못한 'K-바이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가득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투자자들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한국 증시를 지탱하는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가 대폭 하향조정 하면서 그 동안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바이오'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 구도가 지속하면서 미국에서 '생물보안법'이 하원을 통과하자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실었다.

      최근 한국 증시 주변에 마땅히 오갈 곳 없는 대기 자금들은 국내 전문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주당 100만원을 돌파하며 연일 신고가를 경신중이다. 삼성바이오 주가가 100만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21년 8월 이후 처음으로 올해 하반기 들어서만 주가가 50%가까이 급등했다.

      이는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미국의 생물보안법이 직접적인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CDMO 시장은 글로벌 1위인 스위스 론자(Lonza),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 독일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ingelheim) 등이 주요 기업 몇몇이 과점을 이루고 있는데 중국 기업의 미국 내 사업이 사실상 금지되면 나머지 기업들의 이익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삼성바이오 외에 에스티팜, 바이넥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등 CDMO 관련 기업들에 대한 투자 심리도 살아나면서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유한양행과 알테오젠은 올해 가장 주목받은 바이오 기업중 하나다. 유한양행은 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며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회사는 2018년 글로벌 제약사 얀센(janssen)에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금 및 임상 시작과 대상자 모집에 따른 금액, 상업화 성공에 따른 기술료를 수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가가 고공행진했다.

      알테오젠은 신약과 기술수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달 에코프로비엠을 제치고 코스닥 대장주에 등극했다. 심지어 지난 5월 FDA로부터 CRL(보완요구서한)을 받은 HLB도 아직은 신약 허가를 장담하긴 이르지만 주가가 폭락 직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삼성바이오를 비롯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을 대표하는 KRX헬스케어지수는 올해 4000포인트(P)를 넘겼다. 아직 2020년 1월 역대 최고치(5517p)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해 10월 2400선에 걸친 것에 비교하면 강한 투자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분위기를 틈타(?)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바이오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미 에이치엠파마, 셀비온, 쓰리빌리언 등이 공모가 밴드를 결정해 상장일정을 확정했고 동국생명과학, 파인메딕스, 동방메디컬, 온코크로스 등은 거래소 상장심사를 통과한 상태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주목받는 상황은 사업적인 측면을 차치하고, 국내 증시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자금의 수급과도 연관이 깊다. 국내외 증권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블루칩의 목표주가를 대거 하향하고 있는 상황이고 한동안 주목받아 온 2차전지 소재 기업들은 캐즘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됐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완성차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는 있지만 '제조업' 기반 기업의 밸류에이션 한계를 명확히 보이고, 화학 업종은 중국의 저가제품과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침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금리 인하의 수혜를 꼽자면 건설기업들을 들 수 있지만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란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베팅하려는 기관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평가다.

      국내 대형 운용사 주식운용 한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반도체는 이미 컨센서스가 크게 내려앉은 상황이고, 배터리는 꾸준히 우상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주요 투자테마로 보긴 어렵다"며 "(바이오 기업들은)금리 인하의 수혜와 특히 미국 생물보안법에 따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다수의 기관들이 유효한 투자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바이오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세부업종과 사업의 성장성 또는 재무건전성과 거버넌스 이슈에 따라 투자심리가 엇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회사인 셀트리온의 주가는 삼성바이오의 상승률에는 못미치는 형국이다. SK그룹의 바이오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한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주가 역시 3년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주저 앉았다.

      바이오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일반투자자들 보유하고 있어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셀트리온은 사실 삼성바이오와 비교해 아직 미국의 생물보안법의 직접적인 수혜기업으로 분류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물론 단순위탁생산(CMO) 사업을 추진했고,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생산공정, 임상, 상용화를 비롯한 전 공정에 참여하는 CMDO 사업의 사업 성과를 예단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금리 인하기에 주목을 받는 시점에 대형주로서 기관들의 투자가 다수 집행되는 점도 무시할 순 없지만 삼성바이오 등 전문 CDMO 기업들과 견주기엔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한 임원급 인사는 "셀트리온의 경우 거버넌스와 회계의 불확실성을 다소 걷어냈지만 아직 바이오시밀러, CDMO를 모두 아우르는 제약회사로서 밸류를 인정받고 있어 뚜렷한 모멘텀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금리 인하기, 성장주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앞으론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 대한 선별적인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