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기업 자산유동화 도구 아냐?"…경영진 인사도 힘 빠지는 스폰서 리츠
입력 2024.11.19 07:00|수정 2024.11.20 09:51
    한화·롯데리츠 등 대규모 증자에 시총 9500억 증발
    외부 전문가 영입 내세우지만 실권은 그룹이 장악
    롯데리츠 주가 반토막에…신세계 리츠 준비도 '난항'
    LG그룹도 핵심 자산 제외 및 그룹명 미사용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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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장 리츠(REITsㆍ부동산투자회사)들의 잇따른 대규모 유상증자로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특히 SKㆍ롯데ㆍ한화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폰서 리츠의 성장성 한계가 드러나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유휴자산 유동화를 위해 리츠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핵심 자산은 제외한 채 의사결정 권한 없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대기업들의 '겉핥기식' 운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화리츠(4730억원), 롯데리츠(1472억원), 신한알파리츠(1859억원) 등 유상증자를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어지면서 국내 상장 리츠들의 시가총액만 올해 들어 9500억원 가까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한화리츠는 기존 주주 대상 유상증자 청약률이 77.62%에 그치며 올해 증자를 단행한 리츠 중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달 23일 92원에 거래되기 시작한 신주인수권은 마지막 거래일에는 1원으로 폭락했다. 프리IPO 단계부터 참여했던 교보생명마저 유상증자 불참을 선택하며 신주인수권을 매도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스폰서 리츠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리츠는 그룹의 우량 자산 편입은 꺼리는 반면, 수익성이 낮은 자산들을 편입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룹사 차원의 자금 지원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리츠가 그룹의 자산 유동화 창구로만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롯데리츠는 스폰서 리츠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상장 당시 5000원이었던 주가는 지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3000원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주 차원에서 롯데리츠와 롯데물산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상황"이라며 "자산 편입이나 주요 개발 사업이 모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리츠 자산관리회사(AMC) 계열사에는 외부 인력을 영입한 후, 의사결정 권한을 여전히 그룹 내부에 두고 있어 사업 진척도 더딘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리츠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성을 확보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실질적 운용 권한이 없는 '들러리' 인사라는 비판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롯데AMC는 지난해 대표직에 HL리츠운용 출신의 김소연 대표를 선임했다. 지난 인사에서 그룹 내 '순혈'인사로 평가받던 롯데리조트 출신 고원석 대표를 임명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양새다. 롯데리츠의 스폰서인 롯데물산도 마찬가지다. 롯데그룹은 '성골' 출신으로 불리던 김현수 롯데물산 대표를 2020년 롯데렌탈로 이동시킨 뒤, 외부 인사인 JLL 코리아 출신의 장재훈 대표를 영입했다.

      신세계그룹의 리츠 추진도 순탄치 않다. 신세계그룹 AMC 신세계프라퍼티인베스트먼트는 서철수 NH농협리츠운용 대표, 정정욱 전 하나증권 실물금융본부장 등을 영입했다. 다만 실질적 권한은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 등 그룹 인사들이 쥐고 있어, 연내 스타필드 하남점 유동화 계획도 지연되는 상황이다.

      리츠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여전히 그룹 경영진이 쥐고 있어 이들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산 매입부터 운용, 매각까지 모든 과정에서 그룹 승인이 필요한 구조라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해 거래가 파행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 산하 AMC는 금융지주 계열 AMC보다 연봉 수준도 낮은 데다, 그룹 내 비우량 자산을 떠안으라는 미션과 무리한 자금 조달 목표까지 부여받아 전문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리츠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우려를 키운다. LG그룹은 시작부터 여의도 트윈타워 등 핵심 자산은 제외한 채, 외부 자산으로만 리츠를 구성하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리츠 AMC에는 서브원 출신 홍준호 전무를 대표로, 이학구 전 다올자산운용 부사장을 담당 임원으로 영입했다. LG그룹 내부에서는 리츠 사명에 그룹명(LG) 사용도 피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리츠가 실패했을 때 책임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표 인프라펀드인 'KB발해인프라'는 국내 리츠들을 피어그룹 삼아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지만 수요예측과 일반청약에서 모두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발해인프라 주요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이 투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으면서, 리츠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리츠업계 한 관계자는 "GS그룹 등 기업들이 리츠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지만, 앞서 상장한 스폰서 리츠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리츠가 단순히 그룹 자금조달 창구로 전락하는 것은 시장의 신뢰도를 해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