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방산 이어 코인까지…트럼프 등에 올라탄 한화그룹 승계
입력 2024.11.26 07:00|수정 2024.11.26 11:40
    '트럼프 2기' 출범에 주목받는 한화그룹
    '韓 조선' 콕 집은 트럼프, 한화오션 수혜
    한화오션 인수한 김동관 부회장 업적 부각
    생명 인수 美 증권사 가상자산 시너지 기대
    김동원 사장, M&A로 큰 김 부회장 뒤 따라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트럼프 2기'를 앞두고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한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6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는 등 트럼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트럼프의 최측근 중 하나인 애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와도 친분이 깊다.

      한화그룹 주력 사업은 수혜가 기대된다. 트럼프는 현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폐기하고 다시 화석연료에 힘을 싣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LNG와 LPG 수요가 많아지고 이를 운송할 선박 건조도 늘어날 전망이다. 고부가 선박에 강점이 있는 한화오션이 덕을 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국의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콕 짚어 언급하며 한국 조선업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세계 조선업의 한 축인 중국과 갈등 중인 터라 다른 한 축인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트럼프는 지난 1998년 대우중공업(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를 방문한 연이 있다.

      한화오션도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6월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미국은 미국 내 건조 선박만 미국 안에서 운용 가능하다는 법(Jones Act)을 두고 있다. 필리조선소 인수로 미국 상선·방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8월에 이어 이달에도 미국 해군 함정의 MRO(유지보수) 사업을 따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조선 산업이 망가지면서 MRO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졌기 때문에 한국에 SOS를 친 것"이라며 "그 중에서도 한화그룹이 미국의 신뢰를 먼저 얻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에 실패했다가 14년 뒤 재도전에 나서 성공했다. 한화계열사들이 2조원의 신주 자금을 넣는, 인수자에 유리한 방식의 거래였음에도 우려하는 시선이 없지 않았다. 당시 업황은 꺾이기 시작했고 정책금융 지원도 5년이면 끝났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인수는 방위산업을 이끄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공적이 되거나 혹은 경영 실패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현재로선 전자에 가깝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편입 후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반등하고 있었는데 트럼프 당선으로 더 속도를 내게 됐다. 김동관 부회장은 그룹 내 실질 지배력을 강화하는 한편 차기 리더로서의 당위성도 공고히하게 됐다.

      한화생명은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미국 현지 증권사 벨로시티(Velocity Clearing)를 인수했다고 20일 밝혔다. 한화오션처럼 미국에서 직접 금융상품을 발굴하고 판매할 수 있는 전초기지를 마련했다.

      한국은 금융결제원을 통해 주식 주문과 거래의 안정성이 확보되지만 미국에선 그런 공적 기관이 없다. 주식 매도자와 인수자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민간 브로커 딜러가 필요한데, 벨로시티가 그런 역할을 한다. 자기 위험을 지는 투자도 하는 한국 증권사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국 증시 부진에 미국 주식을 찾는 '서학개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국내 증권사를 통해 미국 주식을 거래할 경우 수수료는 현지의 브로커 딜러가 대부분 챙긴다. 한화금융그룹이 미국 현지 딜러를 갖게 되면 상품 발굴이나 소개가 용이해지고 고객의 수수료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으로 디지털자산 영역에서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트럼프는 비트코인 전략자산 보유고를 신설하고,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미국은 이미 가상화폐 ETF(상장지수펀드)가 출시됐고, 트럼프 2기엔 더 우호적인 디지털자산 정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디지털자산 거래량이 일반 주식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벨로시티 역시 디지털자산 영역에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미국에서 먼저 디지털자산 거래 시스템을 갖추고 경험하면 이를 한국 시장이 태동할 때 먼저 접목시킬 수도 있다.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을 비롯해 이병서 부사장, 이한샘 상무 등 중역들이 벨로시티 인수를 위해 수개월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전부터 가상화폐·블록체인 등 디지털 금융 영역에 관심을 가져 왔다. 회사는 올해 들어 미국 자산운용사 등도 인수하기 위해 글로벌 투자은행(IB)에 매물을 물색해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김 사장이 한화금융그룹의 리더로서 한화오션, 한화엔진 등 M&A로 존재감을 키운 김동관 부회장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생명이 미국 주식 거래에 관심을 갖고 벨로시티를 인수했는데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추가적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현재는 금융 서비스 기업이지만 앞으로 디지털자산 전산 서비스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