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맡은 주관사들 난감…KB證, 천보 투자자 모집 난항
엘엔에프 영구채 발행 주춤하고, 에코프로도 규모 줄여 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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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업계에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해체론자로 분류되는 인사를 차기 재무장관에 지명하면서 2차전지 산업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는 2차전지 업계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이고 있다. 관련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수수료 수익을 기대하고 총액인수를 결정한 일부 증권사들은 미매각 물량 부담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처지에 놓였다.
23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스콧 베센트 키스퀘어 창업자를 차기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고 보도했다. 베센트 지명자는 배터리 분야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재정적자를 부르는 파멸 기계"라고 신랄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IRA의 수혜가 예상되던 2차전지 판매업체들에는 악재로 보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전기차 사용을 적극 장려하면서 2차전지 업계의 가파른 성장이 점쳐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IRA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청정 에너지 개발과 사용 지원을 핵심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 정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IRA 폐기 가능성을 시사하자 전기차 산업 전반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미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 현상으로 전기차 판매가 둔화되면서 2차전지 업체들의 실적도 급격히 악화했다. 업계 선두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조차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마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2차전지 업계 전반의 투자심리는 한층 더 위축된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에 IRA 해체론자가 재무장관에 지명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졌다"며 "2차전지 업체들은 설비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데다 자금조달을 추진 중인 기업들도 많은데, 과연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투심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며, 2차전지 업체들의 자금 조달 주선을 맡은 증권가는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KB증권이 주관하는 2000억원 규모의 천보 전환사채(CB) 발행은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신공장 가동에 따른 매출 상승 기대감이 전기차 수요 정체 여파로 퇴색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절반 이상의 미매각 물량을 주관사가 떠안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증권사 IB부서는 미매각분을 자체 북으로 떠안을 경우 일부 패널티를 감수해야 한다고 알려진다.
2차전지 소재기업 엘엔에프의 영구채 발행도 제자리걸음이다. 주관사로 나선 한 대형 증권사와의 세부조건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끌어모으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10월 자사주 교환사채(EB)를 발행한 에코프로의 사례도 2차전지 업계의 자금조달 난항을 보여준다. 에코프로는 자사주를 모두 활용해 1000~150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투자자 모집이 저조해 700억원 조달에 그쳤다. 에코프로비엠이 추진하는 3조원대 투자 유치에 대해서도 시장은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주요 증권사 IB부서들은 2차전지 업체들의 자금조달 주선을 꺼리는 모습이다. 수수료 수익을 기대하고 총액인수에 나섰다가는 그 몇 배에 달하는 미매각 물량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2차전지 업체들의 메자닌성 자금조달이 여럿 진행되고 있는데, 투자심리를 고려하면 주선 난이도가 상당하다"며 "오히려 주관을 맡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천보의 투자자 모집과 관련해 KB증권 측은 "천보는 새만금 신공장 가동시 원가경쟁력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한국, 미국 등 배터리 관련 업체와 장기공급계약을 꾸준히 체결하고 있다"라며 "2차전지 섹터의 투심이 회복된다면 충분히 시장에서 소화될 거래"라고 설명했다.